1. 막연했던 독일 이민이 확실해졌던 계기
H씨는 학사와 석사과정을 졸업한 후, 꿈에 그리던 S그룹에 취업을 하였습니다. 이는 본인뿐만 아니라, H씨의 가족에게도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잔업을 자주하기는 했지만, 이는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기에 크게 게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업무에 재미와 보람을 느꼈고,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H씨 팀 옆으로 해외사업팀이 옮겨왔습니다. 이들의 업무는 주로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일이었고, H씨는 모국어 수준 으로 회의하는 동료들을 보며 한편으로 부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외국어를 잘하게 되었을까?”
H씨도 그들처럼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만약 그게 자기가 아니라면 H씨의 자녀라도 이중언어 구사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H씨와 같은 팀의 동료들은 모두 미국, 네덜란드, 영국 등 해외에서 석사를 졸업한 유학파 출신들이었습니다. H씨도 기회가 된다면 이들처럼 해외 경험을 쌓고 싶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 같은 팀원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친분이 두터웠던 팀 선배 한 명과 진지하게 해외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팀 선배가 했던 한마디는 독일 이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네 의지가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지금 나가야 해. 그리고 네가 정말 해외로 나갈 거라면, 나처럼 돌아오지 말고 거기서 눌러 살거라는 각오로 해. 그래야 할 수 있어.”
2. 독일이민 전 준비과정
계기가 확실해진 그 날 이후, H씨는 그의 아내와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H씨가 한국에서는 대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독일로 간다면 중소 규모의 회사에서 일해야 하는 직종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대기업에 다니면서 누리고 있는 것을 포기할 수 있는지,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지 등 앞으로의 모든 계획을 아내와 함께 공유했습니다. 양가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H씨와 아내 모두 양가의 맞이였기 때문에 부모님들의 반응은 탐탁지 않았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양가 부모님께서는 어떠한 재정적인 도움도 받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이민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민이 점점 구체화될수록 계획을 더 꼼꼼히 짤 수 있었습니다. H씨는 최종목표는 취업이지만, 일단 현지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어학 수업이 시작하는 날부터 끝나는 날, 그리고 H씨가 언제 대학원 입학을 위한 독일어 시험을 치를 수 있고, 대학원에 지원할 수 있는지 등등의 세세한 항목까지 정리했습니다. H씨는 꼼꼼히 계획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이렇게 한번 계획을 짜 놓으니 현지에서 오히려 더 편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계획대로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만 하면 됐기 때문입니다.3. 부부가 함께 이민을 왔기에 가능했던 점
H씨 가족이 마침내 입독을 하고, 어학 비자를 신청할 때 였습니다. H씨는 본인과 아내 모두 어학 비자를 신청할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친절하게도 비자 담당자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었습니다. 둘 다 비자를 신청하기보다, 둘 중 한 명이 어학 비자를 신청하고 나머지 한 명은 어학비자를 신청한 사람에게 종속된 동반 비자를 받는 게 더 유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동반비자를 받은 사람은 일이든 사업이든 제한없이 일을 할 수 있다” 라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친절한 비자 담당자 덕분에 H씨 아내가 어학 비자를 받고, H씨는 동반 비자를 받았습니다. H씨가 직장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어학을 끝내고 자유롭게 취업을 할 수 있도록 결정하는 것이 더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H씨는 어학을 마치고 취업에 성공하였고, 그 때 신청했던 비자 덕분에 취업비자에 대한 걱정 없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4. 열심히 공부한 독일어는 지금 독일 생활의 밑거름
독일에 정착하기까지의 이민 생활을 되돌아봤을 때 H씨부부가 가장 잘한 일은 바로 독일에 오자마자 남편과 아내 모두 열심히 어학을 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H씨 부부에게는 만 3세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오전에는 남편이, 그리고 오후에는 아내가 매일 4시간씩 교대로 인텐시브 코스를 들었습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배정받은 이후에는 남편과 아내가 함께 오전 인텐시브 코스를 들었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까지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저녁에는 집안일과 육아를 마치고 아이가 잠들면 다시 부부는 책상 앞에 앉아 부족했던 독일어를 복습하고, 다음날 배울 단어를 미리 예습했습니다. 때로는 새벽까지 독일어 공부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생활패턴은 10개월간 이어졌고, 마침내 부부는 C1 인텐시브 수업을 수료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때 열심히 해둔 독일어 덕분에 독일인 친구들을 사귀는 것뿐만 아니라,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아이가 적응하기 힘들어할 때나 문제가 생겼을 때, 완벽하진 않지만 선생님들과 독일어로 충분히 소통할 수 있어서 둘 다 독일어 공부 열심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함께 읽으면 좋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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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학원과 취업의 갈림길
H씨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어학 기간 10개월을 마치고 나니 비자 기간이 2개월밖에 남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학 기간 9개월 차에 대학원 진학을 위한 테스트다프 시험을 봤지만, 듣기과목에서 3점을 받아 재시험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시험을 신청하고 결과를 받기까지 2달여 정도가 더 소요되기 때문에 추가 비자 연장을 위해 외국인청을 가는 게 그리 반갑지는 않았습니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학비자가 끝났으니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답변을 받을까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H씨는 일단 어학성적이 부족하더라도 지원할 수 있는 대학원과 취업을 모두 시도했습니다. 애초에 독일 학위 없이 취업하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지원했던 여러 군데의 회사에서 면접을 보자고 제안을 해왔습니다. H씨는 대학원과 취업이라는 두 선택 중에 하루라도 빨리 독일에 정착할 수 있는 취업에 더 무게를 두기로 결정하였습니다.5. 여러번의 면접, 그리고 합격
H씨는 회사 규모가 큰 곳부터 작은 곳까지 총 여섯 군데의 회사와 면접을 보았습니다. 회사의 규모에 상관없이 그가 독일 회사 면접에서 느꼈던 것은 사뭇 달랐습니다. 누군가를 점수 매기는 한국의 면접과는 달리, 독일에서의 면접은 회사는 면접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궁금해했고 면접자 또한 회사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 서로 알아가는 과정처럼 느꼈습니다. H씨도 첫 면접에서는 텍스트에 예상 질문과 답변을 정리해가며 외웠지만 그것이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후 면접부터는 조금 더 편안하게 임했습니다. H씨가 면접을 봤던 회사 중 두 곳에서 적극적인 채용 의사를 밝혔습니다. 한 곳은 이제 막 개업을 한 스타트업 회사였고, 다른 한 곳은 그 지역에서 나름 30년 이상 자리를 잡은 회사였습니다. H씨는 여러 조건들을 두고 고민한 결과 후자를 선택했고 덕분에 현재 독일에 성공적으로 정착을 하였습니다.- 작성: 도이치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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