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 독일어, 독일어
„영어와 독일어, 한국어 사이에서 일렁거린다, 빛은 혹은 어둠은.
일상의 나는 독일어를 듣고 말하지만 언제나 희미한 벽이 나와 그들을 가로막고 있다. 대화는 벽을 관통하여, 나와 그들에게 전달된다. 그것은 흐물거리거나 중간에 툭 부서지거나 지극히 무미건조하다. 우리는 예의 바른 미소를 짓고 서로에 대해 희미한 암시만 지닌 채 헤어진다.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가 미국으로 망명을 가 배운 영어에 대해 언제나 거리감을 느낀다고 했는데 나 역시 그러하다.”
-2018.08.16. 독일에 온지 약 3개월이 지났을 무렵 내가 작성한 글
위 글을 작성했을 때, 나는 일상에서 주로 영어를 사용했고, 영어를 전혀 못하는 독일 사람들에게는 수십 년 전에 배우고 거의 잊어버린 독일어로 떠듬떠듬 대화를 시도했다. 독일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게 된 현재, 저 당시보다 상황은 나아졌겠지만, 그들과 내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희미한 벽“은 농도가 좀 옅어졌을 뿐, 여전히 투명하지 않다. 서로에 대해 지닌 „희미한 암시“ 역시 존속한다. 내가 독일에 사는 한, 독일어는 나를 지속적으로 고통 속에 빠트릴 것이다. 나는 간헐적으로 자괴감에 시달릴 것이다. 이것은 나의 모국어가 아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자. 나의 독일어 구사능력의 결여를 인정하고 난 후,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독일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 사는 한 우리는 이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어를 구사할 줄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그것이 나와 우리 가족의 독일에서의 생존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자 인간으로서 가지는 존엄과 자유의 가치와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독일어: 권력, 자유, 존엄을 지키는 무기
1944년 6월,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 (Ruth Benedict) 는 미국 전쟁 정보국 (OWI: United States Office of War Information) 으로부터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배한 후 미국의 점령 정책을 실시하기 위해 일본 문화에 대한 연구를 의뢰받았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책이 널리 알려진 『국화와 칼: 일본 문화의 패턴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Patterns of Japanese Culture)』이다. 일본 사회와 문화, 일본인의 심리를 설명하기 위해 현대에도 종종 인용될 만큼 강력하지만 논란도 많은 책이다.
나에게 독일어는 메타포로서의 ‘국화와 칼‘이다. 비록 상황은 다르지만, 나 역시 독일이란 낯선 나라에서 평시 상태와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옆집 할머니에게 듣는 동네 주민들의 사사로운 소식부터 독일 매스 미디어가 전달하는 정보와 사상까지 독일어라는 수단을 통해 소통하고 이해한다. 덧붙여 독일인들이 관련 기사에 적은 댓글들을 읽으며 여론을 감지한다. 그렇게 독일 사회와 문화, 독일인의 심리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구조물을 건축한다. 그리고 점점 구조물이 완성되어 갈수록 나에겐 전에 없던 어떤 파워가 생겼음을 느낄 수 있다. 『국화와 칼』을 통해 미국이 일본의 문화적 패턴과 약점까지 이해하고 설득과 지배의 지렛대로 삼았듯이 나 역시 독일어를 수단으로 독일에 대한 모든 것을 인지하고 이해하여 나만의 영역을 만들길 원한다. 상대의 심리와 행동양식에 대한 지식을 소유한 자에겐 일종의 권력이 주어진다. 그런 식으로 나는 처음에 독일에 와서 느꼈던 왠지 모를 불안과 열등감에서 벗어나 점점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또한, 독일에 살면서 여러 가지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그때 나의 독일어는 나와 가족의 존엄을 대변하고 보호할 수 있다. 독일 학교에서는 교사들에게 아이들의 본질에 대해 양질의 정보를 주고 아이들의 발전 방향에 대한 그들의 진심 어린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요컨대, (고급을 지향하는) 독일어를 구사할 줄 아는 능력은 나의 권력과 자유를 의미하고 나와 가족의 존엄을 지키는 훌륭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무조건 세상 밖으로!
이민 생활을 성공적으로 영위하고 있는 한국인 및 외국인들을 만나 보면, 대부분 독일 사회 깊숙한 곳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꼭 공부를 하거나 직업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단체에 소속이 되어 난민들의 자립을 돕거나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나 역시 독일에 온 지 얼마 안되었을 때 3개월 동안 대학병원 입원실에서 간호실습을 했다. 당시 독일어와 간호지식이 부족해 힘든 점도 많았지만, 헌신적인 간호사들과 쌓았던 우정, 흔쾌히 수술현장에 참관을 허락하고 프로세스를 설명해주었던 친절한 의사들, 내가 마음을 열고 다가간 만큼 나에게 마음을 열고 고마움을 표현했던 환자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실습을 끝낸 직후, 독일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나의 두 번째 방법론은, ‘무조건 세상 밖으로 나가기‘이다. 물론 도전한 만큼 깨지고 아픈 나날도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경험은 생의 이력이자 자부심의 근간이 된다는 믿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아가자.관계: 자유롭게, 그러나 기대하지 않기
독일에 살면서 특히 인간 관계의 깊이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체적으로 우리 식의 끈끈한 정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비교적 가벼운 관계맺음에서 나는 한국에서와 다른 관계의 자유로움을 느꼈다. 상대의 개성을 존중해주고 정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서로를 속박하지 않는 관계 말이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나이, 성별, 국적, 종교, 성정체성, 피부색을 떠나 우리는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독일에 살면서 이 사실을 진심으로 깨달았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관계에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먼저 다가서지 않는다. 내 삶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을 때 종종 누군가 다가와 친구가 되길 원한다. 마치 뜻밖의 선물처럼. 그때 한국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수연이가 영우에게 해줬듯 – 낯간지럽지만 – ‘봄날의 햇살‘ 같은 친구가 되어 주기, 이것이 나의 세 번째 방법론이다.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마음가짐
마지막 방법론이다. 위에서 언급한 기대하지 않는 마음가짐은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마음가짐과 연결된다. 나는 내가 생각한 삶을 살기 위해 이 나라를 선택했지만, 이 나라에 기대하는 것이 없다. 나의 전부를 바치지 않는다. 고로, 나는 언제라도 이곳을 떠날 수 있다, 훌훌-. 물론 가족이 다시 한국으로, 혹은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상황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복잡한 일이겠지만, 이민자로서의 삶의 고통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가볍게 대하는 기본 자세는 묘한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동서양의 조화: ‘독일 이민자‘라는 하나의 독특한 세계
이민자의 삶은 힘들고 외롭다. 이국에서의 자유를 택한 대신 우리는 다른 걸 내어준다. 혹은, 그렇게 대가를 치룬다. 그렇지만, 우리는 동양의 유서 깊은 전통, 철학과 문화를 갑옷처럼 입고 서양의 가장 좋은 것을 배우고자 이곳에 왔다. 우리의 아이들 또한 동서양의 양분을 골고루 흡수하여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은 취할 것이다. 그것을 나는 희망이라고 부른다. 모두 힘내시길 바랍니다. 작성: Claireⓒ 구텐탁코리아(//www.gyrocarpu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