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의 분류
주지하다시피, 독일 학교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친 후 독일 교육 제도의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김나지움 (Gymnasium), 실업학교 (Realschule), 중등학교 (Hauptschule) 라 불리우는 학교들 중 하나를 선택해 진학하게 된다. 한국이나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치고 상급학교 진학을 하는 것에 비해, 독일 학교의 아이들은 훨씬 이른 시기에 그들의 미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에 직면하게 된다.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저술가인 알라딘 엘-마팔라니 (Aladin El-Mafaalani) 는 이 세 가지 형태의 학교를 상/중/하류층과 연관시킨다. 즉, 독일 학교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생애 첫 번째 계급의 분류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출신 배경보다 더 중요한 계급의 문제
엘-마팔라니는 시리아 이민 가정의 출신이지만 커리어의 성공에 있어 자신의 출신 배경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의사였기 때문이다. 즉, 자신은 시리아의 특권 계층 출신인 것이고, 그 특권은 부모 세대가 독일에 이주한 이후에도 지속된 것이라고 그는 단언한다. “문제는 (이민 가정이라는) 출신 배경이 아니라 (부와 지위의 척도에 따른) 사회적 계급입니다.” 독일에서 교육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출신 배경보다 가정이 속한 계급과 사회적 환경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서 상급학교로 진학 시 부모의 결정권이 교사의 결정권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실제 초등학교 4학년 때 교사는 그에게 실업 학교 (Realschule) 진학을 권했지만, 그의 아버지가 그를 김나지움에 보내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그것을 끝내 관철시켰다. 결국 그는 김나지움에 진학해 오늘날 학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그보다 더 학습 역량이 뛰어났지만 더 낮은 사회적 계급에 속한 이민 가정의 친구들의 경우 그들의 부모는 김나지움을 권하는 교사의 의견에 반대했고, 그들을 실업 학교 (Realschule) 나 중등학교 (Hauptschule)에 진학시켰다고 한다. 요컨대, 부모가 사회적 특권 계층에 속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김나지움에 진학하고, 그렇지 못한 가정의 아이들은 실업학교나 중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부모 세대가 속한 계급이 자식 세대에게 이어지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계급의 견고함
오늘날 한국에서는 흔히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시대라며 불가능한 계급 이동에 대해 한탄한다. 앞서 살펴보았듯, 이 현상은 독일도 예외가 아니다. 독일 역시 계급 이동, 계층 상승이 어려운 사회라고 연구자들은 말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독일에서 학문적, 사회적 지위는 대개 상속된다. 독일의 한 가족이 계층 사다리를 올라가는데 평균 6대가 걸린다고 한다. 부모 세대가 대학을 나오지 않은 가정 출신의 자녀 중 27 퍼센트만이 대학에 진학하고, 부모 세대가 대학을 나온 가정 출신의 자녀 중 21 퍼센트만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다. 이러한 계급의 견고함은 청소년의 학교 이동 현상에서도 엿볼 수 있다. 가끔 독일의 학교 간 이동이 자유롭다고 이야기하는 한국인들을 본다. 즉, 아이가 독일어 실력이 부족할 경우, 실업학교 (Realschule) 나 중등학교 (Hauptschule)에 우선 입학시키고 실력을 키워 나중에 김나지움에 보내자는 것이다. 그것은 이론적으론 가능하지만, 실제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실업학교 (Realschule)에서 다른 학교로 전학 가는 아이들의 90퍼센트가 아래로, 즉 중등학교 (Hauptschule)로 가고, 10퍼센트만이 위로, 즉 김나지움으로 옮긴다고 한다. 실제로, 나의 큰 아이가 김나지움에 다닌 지난 2년 동안 실업학교 (Realschule)에서 같은 학년으로 전학 온 아이는 단 한 명 밖에 없었다.구두 시험: “점수는 부당하고 주관적입니다“
마지막으로, 독일 학교의 평가 시스템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독일 학교엔 독특한 평가 시스템이 존재한다. 과목마다, 교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개 필기 시험 (Klassenarbeit) 40퍼센트와 구두 시험 (mündliche Prüfung / mündliche Noten) 60퍼센트의 비율을 반영하여 과목 별 최종 점수를 부여한다. 구두 시험은 (차라리 정말 대학처럼 구두로 시험을 봤으면 좋겠지만) 수업 중 발표 참여도와 수업 태도를 평가하는 것이다. 예전에 회사를 다닐 때 독일 직원들과 일하면서 감탄했던 점 중 하나가 발표와 토론을 잘한다는 것이었다. 직장 경험이 거의 없는 독일 인턴 사원들도 그랬다. 아마도 독일 학교의 구두 시험 평가 시스템에 의한 적절한 요구와 동기부여 하에 어렸을 때부터 잘 훈련되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 구두 시험 평가 시스템이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점에 있다. 실제로 구글에 독일 학교의 구두 시험 점수와 관련해서 검색하면, 과거부터 현재까지 온갖 신문 기사들과 개인 사이트 등 다양한 매체의 축적된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대부분 불공정하고 부당하고 주관적인 구두 시험 점수에 대한 내용이다. 내 생각에 이 모든 불평, 불만의 원인은 부정확하고 모호한 평가 기준에 있다. 실제로, 큰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들 중 단 한 사람만이 항목 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구두 시험 평가 기준을 학기 초에 학생들에게 나눠 주었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한 교사가 X라는 학생에게 수업 태도가 좋지 않고, 숙제를 잘 해오지 않으므로 구두 시험 점수 3을 준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수업 태도와 발표력이 좋고 숙제도 꼬박꼬박 잘해오는 학생 Y에게 같은 점수를 주었다. 이유에 대해 숙제는 구두 평가 기준에 들어가지 않고, 발표를 한 수업 당 평균 두 번 밖에 하지 않아서, 라고 교사는 설명했다. Y는 “더 발표를 하고 싶어도 당신이 나에게 발표 기회를 주지 않는데 어떻게 하는가? 왜 X에겐 숙제가 구두 시험 평가의 기준이고 나에겐 기준에서 제외되는가?”라고 항의했다. 교사는 즉답을 피했다.함께 읽으면 좋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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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아이들도 부당하고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이 구두 시험 평가 시스템은 이민 가정의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그것의 불합리의 강도는 더 세게 느껴질 것이다. 실제 독일 백인 아이들에게 더 많은 발표 기회를 주고 관대한 점수를 주는 교사들이 독일 학교 현장에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큰 아이 친구의 경우 기본적으로 내성적인 독일 여자아이여서 수업 태도는 바르지만 발표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구두 시험 점수는 과목을 막론하고 거의 1, 2를 받는다. 발표를 하지 않아도 점수를 잘 받으니 “발표를 열심히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그 아이는 말했다. 영리하고 야심 있는 이민 가정 아이의 경우 상위권 백인 아이들과 같은 성과를 내기 위해선 몇 배의 노력을 더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사회학자 엘-마팔라니는 몇 년 동안 학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아이들을 초등학교에서 상급학교에 진학시키는 문제에 있어 교사보다 부모의 결정권이 더 크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교사의 의견도 결정적일 때가 있다. 이때, 교사들의 ‘사회적 필터’가 작동된다고 엘-마팔라니는 주장한다. 그는 말한다. “그들은 가장 힘든 사람을 가장 엄격하게 평가합니다.” 나는 이 ‘사회적 필터’가 상급학교 진학을 결정할 때만 작동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이들 사이의 (예컨대, 독일 백인 아이와 이민 가정의 아이) 갈등의 문제나 구두시험 평가와 같은 아이들의 학교생활 전반에 걸쳐 작동된다.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교묘한 방식으로 그것은 아이들을 선별한다. 그 과정에서 이민 가정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타자성 (otherness, Anderssein)’ 에 대해 반강제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엘-마팔라니의 주장을 내 식으로 표현해보겠다: “그들은 생물학적으로 ‘다른’ 아이들, 사회적/정치적/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배경의 아이들을 가장 엄중한 잣대로 평가합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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