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린 틈을 타 잠시 떠났고, 잘 돌아왔다.
새로운 것을 보고 눈이 호강했지만, 시각이 받아들인 무수한 정보를 되새김질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대단한 시련은 없었지만, 순간순간 해결하고 넘어갔던 문제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블로그와 유튜브들의 자료를 보며 나의 경험 위에 다른 이들의 경험을 얹어 버무리며 다시 정리해보는 중이다.
왜 떠날까.
산적한 현재의 문제들을 제쳐두며 ‘망각의 자유’를 얻는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 내내 아슬아슬하게 하루를 겪어내는 보람이 있다. 모든 숙박 예약을 미리 완벽히 해놓기는 커녕, 하루 전날 혹은 당일 숙소를 지정하며 당장 내일 갈 곳을 닥쳐서 고민하거나 수정하는 긴장감을 즐긴다. 긴장감, 임시성, 즉각성, 융통성, 해내고 나서 얻는 쾌감이나 다행감, 우리 가족도 해냈다는 뿌듯함과 자신감.
집에서는 해야 할 일 투성이다. 그리고 많은 시간 동안, 집안의 어른으로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이나 아이들의 학업 플랜을 짠다. 나와서는 좀 가벼워지고 싶다. 너무 많은 계획을 짜면 기대감이 커지고, 그럼 여행조차도 자유가 아닌 구속과 압박으로 변질된다. 융통성 있는 순조로움을 경험하고 싶고, 계획을 짜는데 든 시간과 에너지를 최소화하여 가성비 높은 자유를 원한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초조했던 성질을 누그러뜨리는 계기로도 삼고 싶다.
나가는 김에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명확히 추구하거나 꼭 바라는 것은 없다. 어떤 지역에 들어가면 그 지역만의 특별한 갤러리를 가야겠다는 정도? 그보다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감동과 깨달음을 바란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중에서
- 작가: 익명의 브레인 닥터 / 의사
말보다 글로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13년 차 신경과 의사입니다. 우연히 코로나 시대의 독일을 겪는 중입니다.
- 본 글은 익명의 브레인 닥터 작가님께서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 응원의 메세지나 문의를 아래 댓글창에 남겨주세요. 댓글을 남겨주시면 작가님께 메세지가 직접 전달이 됩니다.
ⓒ 구텐탁코리아(//www.gyrocarpu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