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메르켈 총리는 현재의 Lockdown 지침을 더 촘촘히 강화하면서 2월 14일까지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마스크 기준을 한국 KF94와 같은 FFP2로 바꾸는 것, 재택근무를 더 활성화시켜 대중교통 이용을 극도로 자제하는 것 등이 추가 사항이다. 이유는 모르나 지난 3-4월과 다르게 독일의 감염 빈도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아직도 대부분의 주에서 10만 명당 감염자 수가 100명이 넘는다.
자발적이자 비자발적인 은둔 생활이 2021년의 시간조차 빠르게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그래도 오늘까지 백신 1차 접종자가 120만 명이 넘었다는 점이 희망을 주고 있다. 벌써 일 년, 코로나는 되도록 빼고 지난 일 년을 되짚어보는 중이다.
가장 빈번히 드나들기 시작한 곳은 마트와 빵집이다. 한국에서 ‘유기농’하면 만원이 훌쩍 넘고 카트를 조금만 채워도 20만 원은 우스웠는데, 여기는 저렴하고 신선한 ‘Bio’ 천국이었다. 손이 자주 가는 식자재들의 가격이 오천 원 안팎으로 가격이 형성되어 있었고, 식료품의 종류가 다양해서 요리를 위해 쇼핑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외식 비용보다 장바구니 비용이 훨씬 저렴하여 집에서 요리하여 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유럽이 환경 보호 정책에서 선진적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는데, 확실히 플라스틱과 비닐 포장률이 낮아 보였다. 어떻게 보면 제품 보호가 허술해 보일 정도로 종이와 유리 의존도가 높았다. 빈 생수병이나 맥주 캔 등을 기계 수거함에 넣어 일정 금액을 현금으로 교환하는 pfand 시스템이 있다. 기껏 열심히 pfand를 해서 영수증을 받아놓고 마트 계산대에서 제출하는 걸 깜박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괜찮은 재활용 유인책이라 생각한다.
유럽의 식수에 석회질이 많다는 얘기에 생수를 사다 마시다가, 매번 사다 나르는 것도 빈 병이 집에 쌓이는 것도 pfand를 하는 것도 귀찮아져 현재는 수돗물을 필터 없이 그냥 마시고 있다. 알프스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물이라는 현지인들의 말을 믿고 있고, 마시자마자 흡수가 쫙 되는 게 물 맛이 참 좋고 냄새도 없다.
자전거가 일상인 문화. 출퇴근과 등하교에 자전거가 필수이다. 자전거 도로가 보행자 도로와 1:1로 나뉘어 있다. 일반 자전거도 많지만 자전거 앞 혹은 뒤에 유모차 겸용 수레 같은 걸 많이들 달고 다닌다. 자전거 뒷 자석에 유아 전용 카시트를 달고 다니는 경우도 많다. 수레엔 어린이들이 1명에서 3명까지 오순도순 탄다. 세 살 전후의 어린아이들도 페달 없는 밸런스 자전거를 쌩쌩 잘 탄다. 조심스럽고 긴장하는 기색이 없이 씩씩하게 혹은 거칠게 주행한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자전거를 이용하여 이동한다.
비가 쏟아져서 우산이 필요한 정도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빠랑 나란히 자전거를 타며 이동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독일 가정교육 문화가 궁금해진다. 놀이터에서 혹은 마트에서 옆 눈길로 구경하기로는, 위험할 것 같은 상황인데 ‘당장 그만둬’라고 말하기보다 시간차를 두고 지켜보는 경우가 많았다. 어릴 때부터 몸을 거칠게 놀리고, 일찍 집에 귀가하여 저녁 8시부터 방에 들어가 잘 준비를 하고, 학원 문화가 없고, 14살부터 집에서 음주를 배우며 생활 철학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문화가 국력의 기본이 되나 보다.
아이들의 근력이 눈부시다. 놀이터가 중요한 지역 시설이자 아이들 체육 시설이다. 일정한 거리마다 다양하고 재밌는 나무와 흙 놀이터가 많다. 놀이터의 클래스가 다르다. 체력 단련장에나 있을 법한 로프 시설이 많은데, 근력과 유연성 균형 감각을 키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더럽게 뒹굴거리면서 논다. 기어 다니는 영유아들이 손에 흙을 쥐고 입에 넣어도 엄마들이 크게 개의치 않는다. 자기가 알아서 뱉겠지. 놀던 손으로 그냥 빵을 집어먹는 건 예삿일이다.
지난 1차 lockdown 때는 놀이터마저 금지하였는데, 이번엔 놀이터는 개방하고 있다. 아이들이 즐겁게 숨 쉬며 몸을 놀릴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
생활공간의 답답함은 적응이 되었다. 세탁기가 4kg이다. 매일 빨래를 돌리니 물과 세제 소비량이 더 클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 기준에서는 상상도 안 되는 부분인데, 세탁기가 없는 집을 위한 공용 세탁소가 여전히 활발히 운영 중이다. 오래된 주택을 개량해서 사는 경우가 많아 그런 거 같다. 참고로 화장실 바닥이 건식이라 시원하게 물청소를 할 수가 없다. 물이 빠지는 배수구가 없어 바닥 물청소는 불가능하다. 정말 답답할 때가 있지만 화장실 바닥에 검은곰팡이가 없는 장점이 있다.
세탁기만큼 답답한 것이 냉장고이다. 한국 냉장고의 1/4 크기이다. 냉동고 역시 마찬가지이다. 냉장고가 작으니 장을 봐오면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다음 장을 볼 타이밍이 되면 냉장고는 텅텅 빈다. 먹을 만큼만 사서 넣어놓을 수밖에 없고, 재고 음식이 없으니 냉장고 파먹을 일이 없이 낭비가 없는 장점이 있다.
도심의 숲과 공원은 사시사철 소중하고 유용한 공간이다. 산책과 조깅을 위한 코스가 완벽하다. 산책은 독일 현지인들에게 의식주만큼 소중해 보인다. 영하의 날씨에도 조깅을 지속하는 생활 체육인이 많다. 어릴 때부터 놀이터에서 키워온 체육 능력이 생활 스포츠로 이어지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거의 앉아서 생활하던 사람이 여기에서 하루 만보를 우습게 여기도록 만들었으니, 환경이 유도하는 변화는 중요한 것 같다.
공원은 각종 스포츠 그라운드가 된다. 냇가의 지형에 따라 서핑을 즐길 수 있는 곳도 있고, 깊이와 상관없이 물놀이와 수영을 한다. 고정된 시설이 없이 사람들이 이동식 네트나 장비를 들고 다니며 축구, 배드민턴, 핸드볼, 체조, 원반 날리기 등을 즐긴다. 공원 한복판에 삼삼오오 모여 맨발로 옆구르기와 물구나무서기를 함께 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볕이 좋은 날에는 공원 여기저기에 매트를 깔고 누워 요가나 독서를 한다. 함박눈이 내리면 썰매를 즐긴다. 썰매는 모든 가구의 필수품이다. 집 앞에서 썰매를 공짜로 무한대로 즐길 수 있다니, 아이들에겐 천국이다.
지근거리의 녹지가 풍성한 공원에서 산책과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수혜를 누리는 현지인들을 보면서, 한국 사람들의 ‘정신 건강’과 ‘스트레스’에 대해 생각을 하곤 했다. 낮에도 마트와 놀이터에 포진한 젊은 아빠들을 보면서 국민들의 평균 업무 시간과 휴가 기간을 비교해보고, 누리는 생활 여유와 복지를 비교해봤다. 문헌을 찾아본 바 없고 독일을 피상적으로 경험해본 것이 전부이지만, 이 시기가 마음에 던진 파동은 잔잔하게 오래 지속될 것 같다.
고작 일 년인데 너무 단정적으로 쓴 것은 아닌지, 경험치가 늘면 또 생각하고 글로 남겨야겠다.
- 작가: 익명의 브레인 닥터 / 의사
말보다 글로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13년 차 신경과 의사입니다. 우연히 코로나 시대의 독일을 겪는 중입니다.
- 본 글은 익명의 브레인 닥터 작가님께서 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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