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지 25일. 나는 지금 병원에 있다. 부주의한 실수로 수술한 부위에 문제가 생겨 다시 봉합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번에는 울며 수술실에 들어갔다. 독일에 두고 온 아이와 남편 생각에.입국한 지 열흘 만에 입원을 했다. 열흘 동안 장거리 비행과 시차로 몸을 추스르지 못할 때였다. 입맛을 잃었고, 부종이 시작됐으며, 변비마저 겹쳤다. 치명적인 실수는 뜨거운 물주머니였다. 수술한 배 위에 잠시 올려졌던 물주머니로 수술 부위에 경미한 화상을 입었다. 며칠 지나자 수포가 생기고 부풀어 오르다가 기어이 터졌다. 어이가 없고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새벽에 119를 불렀지만 갈 곳이 없었다. 내가 자가 격리자였기 때문이다. 어느 병원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구청 담당자 역시 최선을 다해 자가 격리자 수용 병원에 연락을 돌렸지만 돌아오는 답은 모두 노였다. 하도 방법이 없으니 119 응급차를 타고 어느 대형 병원의 응급실로 무작정 가보기도 했다. 당연히 받아주지 않았다. 소독과 응급조치라는 선처를 베풀기는 했다. 최대한 빨리 다른 병원을 찾아가시란 조언과 함께. 언니는 울었다. 아무 데도 받아주는 곳이 없는데 우리 동생을 어디로 데려가란 말씀이세요. 제발 저희 동생을 받아주세요, 선생님들. 코로나 검사도 받았습니다. 음성이에요. 제발요. 그래도 그들은 받아주지 않았다. 사정은 딱하지만 저희도 병실이 꽉 차서 어쩔 수가 없어요.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119 대원들이 오라는 병원이 있으면 언제라도 전화를 주면 바로 달려오겠다며 위로의 말과 함께 떠났다. 어느 은인의 도움으로 늦은 오후에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을 했다. 차후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진다는 각서에 서명도 했다. 병원에서도 자가 격리가 끝나는 5일 동안 격리 병동에 수용되었다. 6인실 병동에 혼자. 병실 공기를 빼는 기계의 소음이 심한 곳이었다. 불면증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담당의는 그 사이 농양이 많이 생겼다고 했다. 사흘 후 임시 봉합 수술을 받았다. 부분 마취로 진행했는데 말 그대로 죽는 줄 알았다. 아파서. 자가 격리가 끝난 5일 후에 일반 병실로 옮겼다. 해가 잘 드는 6인실 창가였다. 그동안 CT를 세 번 찍었고, MRI도 찍었다. 몰랐으니 했지, 내 생애 다시는 MRI를 못 찍을 것 같다.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다. 시간은 또 왜 그렇게 긴 지. 무시무시한 소음도.
입원한 지 2주가 지났다. 퇴원은 언제쯤 하게 될는지. 3주는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임시 봉합을 한 지 사흘 만에 수술을 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언니 얼굴을 보고 울면서 수술실에 들어갔다. 전신 마취라 괜찮을 줄 알았다. 문제는 수술 후 통증이었다. 그렇게 아픈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무통을 달고 있어도 아팠다. 첫날의 극심한 통증. 그런데 다음 날부터 걸으란다. 수술 후 사흘 동안의 통증을 내 어찌 잊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통증의 강도가 줄어드는 것은 신기했다. 며칠 후엔 무통을 뗐다. 매일 세 끼 식후에 먹는 진통제 알약을 처방받았다. 어제는 진통제마저 안 먹었다. 수술 후 사흘 동안은 조금밖에 걷지 못했다. 일어나고 움직이고 눕는 게 다 아픈데 어쩌나. 아픈 게 무서웠다. 돌아보면 이 모든 것이 내 친구 M의 충고 덕분이었다. 그 사흘째 저녁에 M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SOS를 했기 때문이다. 한 번에 10분씩 걷는다는 내 말에 M이 걷는 시간을 늘려보라고 했다. 친구도 나도 부종을 걱정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산 압박 스타킹을 신어도 허벅지가 부어오르고 단단해졌다. 친구의 말을 듣자마자 떨치고 일어났다. 잦은 검사와 금식으로 변비도 시작되었다. 병원의 규칙적인 삼시 세 끼로 뱃속은 아수라장. 무서운 부종을 해결할 길은 걷는 것뿐이었다. 담당의는 내 수술 부위가 열리지 않게 수술 직후부터 복대 2개를 겹으로 하고 있으라 했다. 그의 온 신경은 복부 안에 다 제거하지 못한 농염에 집중되었다. 부종과 걷는 문제는 내 몫이었다. 그때부터 목표를 달리했다. 하루 10회, 매 시간 20분 걷기로 상향 조정했다. 매일 세 시간, 만 보 걷기. 그렇게 1주일을 걸었다. 수술 후 60kg까지 늘어나던 몸무게는 매일 걷는 것만으로 55kg대로 내려갔다. 변비 해결은 당연. 체중이 많이 빠진 건 사실인데 몸은 가볍다. 걷기로 다리에 힘도 생기고. 아이러니한 건 잃었던 밥맛까지 병원에서 찾았다는 것. 병원밥이 맛있을 줄 어떻게 알았겠나. 밥과 국, 메인 고기반찬은 손이 덜 가고, 세 가지 야채 반찬을 주로 먹는다. 생선은 먹는다. 요즘은 친정 엄마가 매일 현미밥과 미역국과 나물을 한 가지씩 언니 편으로 보내주신다. 엄마의 음식을 먹자 병원밥에 손이 가지 않았다. 병원이 언니 집에서 멀지 않아 다행이었다. 아직까지 해결 못한 건 잠이다. 입원 후부터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있다. 어제는 수면제 반 알을 처방받고 5시간 가까이 잤다. 얼마나 개운하던지! 오늘 새벽에는 탕비실에 따뜻한 물을 받으러 갔다가 열린 창문으로 빗소리를 들었다. 어찌나 듣기 좋던지! 내 침대 창 밖 대로에는 벚꽃도 피었다.
- 작가: 뮌헨의 마리
뮌헨에 살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북 <프롬 뮤니히><디어 뮤니히><뮌헨의 편지> 등이 있습니다.
- 본 글은 마리 오 작가님께서 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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