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하게 마지막 일주일 어쩌고 저쩌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한 주가 지나면 더 이상 베를린에 있지 않을 것, 이라는 현실 인식이 이렇게 만들고 있다.
더 의미 있게 보내야지, 애써 다짐한 것도 아닌데 마지막 7일의 1일 차인 오늘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많은 일을 겪고 보니 또 이렇게 기록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아이에게 도시락 메모를 남겼다.
거의 매일 특별히 바빠서 쓸 시간이 없는 날을 제외하곤 하던 일이라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오늘 아침 메모를 남기는 기분은 확실히 좀 달랐다. 아이 스스로 ‘이번 주가 마지막 주’라며 계속 아쉬움을 내비쳐서였는지도 모른다. 오늘부터 시작된 우리의 특별한 일주일을 더 더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자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자고 메모를 남겼다. 늘 그렇듯 사랑해로 시작해 사랑해로 끝맺음하면서. 그럴 땐 또 무심하기 짝이 없는 아들이라 엄마 메모에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진 않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이가 메모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위로받거나 힘을 얻게 될 것임을.
단골 카페 마지막 출근 도장을 찍으러 갔다.
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이었다. 다시 코로나가 창궐한 이후로 또 발길 뜸했으니.
아이를 학교 앞에 내려주고 카페로 이동했다. 학교에서 차로 5분 거리, 아침 8시에 문을 여는 그 카페에 내가 출근 도장 찍는 시간은 항상 8시 15분에서 20분 사이다. 절친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3명이 운영하는(한 명은 사장님이고 두 분은 베이킹 등 일을 해주는 분 같다) 그 카페는 갈 때마다 같은 풍경이 펼쳐지곤 한다. 사장님 포함 중년 여성 3인방은 야외 테이블에서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떨고 있고, 어떤 날은 사장님 아들이, 어떤 날은 친척으로 보이는, 한껏 꾸미고 다니는 젊은 언니가 주문을 받는다.
오늘은 코로나로 인한 폐쇄 정책으로 그 익숙한 풍경을 볼 수 없었다. 실내는 물론 야외 테이블도 다 사라졌고 오직 투고만 가능. 중년 여성 3인방 중 한 분이 오더를 받았다. 오늘 한번 다른 메뉴를 시켜볼까 했으나 마지막 출근도장이니까 항상 하던 대로 하기로 했다. 라지 사이즈 아메리카노와 크루아상.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게 된 후 ‘맛있게 드세요’라고 서툰 한국어로 인사해주곤 하던 사장님 아들이 있었더라면, 무뚝뚝한 듯 보이면서도 잘 웃어주던, 멋지게 꾸민 젊은 언니가 있었더라면,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그동안 이곳에서 맛있는 커피와 크루아상으로 행복했다고, 다음에 베를린에 오면 꼭 들르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뭔가 마무리를 하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카페 앞에서 잠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책을 보거나 일을 하거나 아주 가끔 누군가를 만나 수다를 떨기도 했던 그 특별한 것 없는 카페가 나에게는 너무나 특별한 장소였으므로.
통신사 말은 믿을 수가 없다.
베를린 생활 정리는, 지난달 컨테이너를 한국으로 보내고 살던 집에서 나오면서 거의 마무리가 됐는데도 여전히 남은 일들이 있다. 오늘은 통신사 공유기를 반납해야 했다. 사실, 통신사에서는 반납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독일에서 전화 및 인터넷 등 통신사 개설 및 해지 문제는 정말로 너무너무너무 힘든 일이다. 누군가의 경우는 아주 운이 좋아서 다 한 번의 불편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일의 통신사, 하면 다들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나마 개설은 좀 나은데 해지 절차는, 와 진짜 이 과정에서 뚜껑 한 두 번 안 열려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파고 파도 끝을 모르고 나와서 일일이 다 설명하는 것도 입 아플 정도. 매장에 가면 전화를 하라고 하고, 전화를 하면 자기 담당이 아니라며 다른 부서로 돌리고, 애써 하나를 해결하고 나면 다른 항목은 자기 담당이 아니라며 또 전화를 돌린다. 필요한 일이 있어서 이메일을 보내면 편지로 보내라고 하고, 편지를 보내면 받아 놓고도 못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서비스를 하면서도 여태 기업이 잘 살아남고 있다는 게 그저 신기방기 하다.
그러니 공유기 반납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어떻게 믿나. 그랬다가 나중에 못 받았으니 물어내라고 하면? 애초에 그런 일은 싹을 잘라야 하므로, 나는 확실하게 대리점 매장에 가져다주고 빼도 박도 못하게 반납을 받았다는 서명을 받아올 작정이었다. 같은 일을 겪어본 지인들도 매장에 가져다주는 것을 적극 추천했다. “택배로 보냈는데, 못 받았다면서 물어내라고 하더라고”라는 에피소드를 들려주면서. 그런데 이게 웬 일. 매장에 갔더니 자기네 담당이 아니란다. 이런 일을 하는 고객 센터 본사로 직접 보내라며 주소를 준다. 불안하긴 한데 어쩔 수 있나. 택배를 보내면서 주소가 선명히 적힌 박스 상자를 인증 샷으로 촬영해두고, 택배 발송 영수증을 고이 간직해두었다.
그 클럽엔 꼭 가봐야 해.
베를린은 클러버들의 천국이라고 한다. 클럽과 나는 상관관계가 1도 없으므로, 누군가 클럽을 가보지 않으면 베를린을 다 알지 못하는 것, 이라고 해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그런데, 꼭 가보고 싶은 딱 한 곳이 있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베르크하인. 사실 이곳이 유명해진 건, 그 선정 기준은 정확히 모르겠으나, 랭킹 세계 1위의 클럽이라는 타이틀도 타이틀이지만, 아무에게나 입장이 허락된 곳이 아니라는 데에도 지분이 있을 게다. 그렇다고 무슨 규정이 정확히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검은색 정장을 입으면 들어갈 확률이 높다고 하고, 누군가는 혹 일행이 같이 갔더라도 혼자인 척하라고도 했다. 그런데 다 정답이 아니다. 핵심은 베르크하인의 악명 높은 문지기 아저씨의 맘에 들어야 하는 것. 아저씨는 유명 사진가라고도 하는데 뭐 문지기 유명세로 사진가 유명세를 얻은 건지 그 반대인지는 모르겠는데 여하튼 아저씨의 그 ‘맘’은 알다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스토리 때문에 도전 의식이 동하여 가보고 싶었던 것은 전혀 아니고, 옛날 발전소 건물을 개조해 사용 중이라는 베르크하인의 내부가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돼 있어 오픈된 이미지는 많지 않지만 구글링 해보면 몇 장 돌아다니는 베르크하인의 내부 사진은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너무나도 충분하다. 이곳이 진짜 클럽이란 말인지, 여기서 음악을 틀으면 도대체 어떤 사운드 일지(여기는 사운드가 압권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내부 사진을 보면 안 그럴 수가 없다), 상상 자체로 환상적이다.
클럽일 때는 가보고 싶어도 갈 수 없었지만, 지난가을 한 번의 기회가 오긴 했다. 코로나로 인해 클럽이 영업을 못하게 되자, 임시적으로나마 갤러리로 변신을 선언한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선언이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잠시 놀랐다가, ‘아이디어 낸 사람 천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선언. 누구도 상상 못 한 이 발상의 전환이 가능했던 건 베르크하인의 내부 구조 덕분이었을 게다. 높은 층고, 낡은 듯 웅장한 내부, 기둥 사이사이 신비한 느낌마저 내뿜는 그곳은 애초부터 갤러리였어도 훌륭한 곳이니까.
현대미술 갤러리로 잠시 변신한다는 소식을 들은 뒤 흥분했던 마음은 그러나 이내 깊은 실망으로 돌아섰다. 시간 별로 소수의 인원에게 허락된 투어는 이미 출국 일까지 예약이 풀.
가기 전에 적어도 건물이라도 직접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기껏해야 외관이나 구경하고 오는 건데도 뭐가 좋다고 차로 25분을 달려가는 내내 들떠 있었다. 이럴 걸 왜 진작 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 따위는 들지도 않았다. 아마 오늘이어서, 마지막 일주일의 첫날이어서 드는 기분인지도 몰랐다.
멀리서 봐도 ‘내가 베르크하인’이라고 쓰여 있는 건물을 보니 미소가 만연한다. ‘Morgen ist die Frage(내일은 질문이다)’라고 큼지막한 현수막이 아주 시크하게 붙어 있는 건물은 누가 봐도 웅장한 미술관 그 자체였다. 저곳이 원래는 클럽이란 말이지, 진짜 기가 막히다.
‘여기서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겠군, 이 형광 표딱지는 들어갈 때 붙여서 인원수를 체크하는 것이겠고, 베를린에서 이렇게 CCTV가 많은 건물을 보다니 신기하네, 여기가 입구인가 보다, 이 상징물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혼잣말을 하다가, 동행한 남편이랑 대화를 하다가 그렇게 기껏 20분도 채 둘러보지 않았는데도 그 새 나는 이미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와서 정말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진짜 마지막까지 에피소드 잔치네.
애써 흥분을 가라앉힐 필요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차에 타자마자 휴대폰이 먹통이 됐다. 다행히 아는 길이라 내비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지만, 여러 번 껐다 켜도 계속 반복되니 슬 불안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의 폰도 같은 상태. 심 카드를 읽을 수가 없다는, 서비스 지역을 벗어났다는 안내만 반복됐다. 뭐지?
얼마 후 남편이 심란한 말을 했다. “오늘이 기존에 계약된 인터넷 서비스 종료되는 날인데, 인터넷 끊으면서 전화까지 같이 끊어버린 거 아닌가?” 둘이 이야기하는 동안 추측은 현실로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앞에서 말했듯이 독일에서 통신사 관련 일은 뭐가 터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으니까. 신기한 건 보통 전화는 전화, 인터넷은 인터넷, 담당 부서가 달라서 그렇게 서비스 신청 때마다 다른 데로 하라고 미루고 미루더니, 이런 일은 또 칼 같이 인터넷과 전화를 한 번에 처리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와, 정말 여기 통신 서비스는 어떻게 하면 고객이 더 불편해질까를 연구하는 거 같아. 대단하다.” 솔직히 화도 안 났다. 정착하는 과정에서 하도 많은 에피소드를 겪은 덕분이다.
열을 내는 대신 차분하게 다음 스텝을 논의했다. 일단 담당자에게 연락을 해보겠지만 늘 그렇듯이 처리가 빠르게 잘 안 될 수 있으니, 그러면 남은 일주일은 그냥 프리페이드 폰을 사용하기로 하자고. 이렇게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다니 역시 세월이, 경험이 무섭긴 무섭다.
에어비앤비에 돌아와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답이 없다. 솔직히 빠른 답은 기대도 안 했다. 약 2시간이 흐른 후, 예상치 못한 대반전이 일어났다. “아, 지금 00 통신사 사용자들이 다 난리가 났대. 뉴스 떴어. 우리 계약 문제가 아니라 통신 서비스 자체에 문제가 있나 봐.” 남편이 말했다.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니 개인적으로 처리할 절차는 없어졌지만, 한번 문제 생기면 복구 때까지 꽤 오래 걸리는 이곳 특성상 언제나 이 사태가 끝날 지 알 수 없으니 좋아할 수만도 없는 일. 언젠가 같은 통신사의 인터넷 서비스가 끊겨 24시간 넘게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았던 일화를 떠올리며, 이번엔 과연 오늘 안에 될 것인지 의문이었다.
다행히 서비스는 약 5시간 만에 복구되었다. 한국 같으면 5시간도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우리는 오늘 안에 된 게 어디냐며 기뻐했다. 사람이 이렇게 적응을 잘하는 동물이다. 그나저나, 애먼 통신사 담당자만 일 못한다고 욕한 게 미안해지네.
- 작가: 어나더씽킹 in Berlin/공중파 방송작가,종합매거진 피처 에디터, 경제매거진 기자, PR에이전시 콘텐츠 디렉터, 칼럼니스트, 자유기고가, 유럽통신원 활동 중, ‘운동화에 담긴 뉴발란스 이야기’ 저자
현재 베를린에 거주. 독일의 교육 방식을 접목해 초등생 남아를 키우며 아이의 행복한 미래에 대해 고민합니다.
- 본 글은 어나더씽킹 in Berlin 작가님께서 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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