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사는 삼식이 남편을 둔 한국인 아줌마의 아침은 조간신문이 아닌 마트 전단지로 시작된다. 이번 주에는 어떤 할인 상품들이 나왔는지 마트별로 살펴보고, 각종 어플도 확인한다. 필요한 물건이 할인을 한다면 도보 30분 정도의 거리는 고민없이 직진행이다. 우리 집의 유일한 차인 장바구니 끌차(?)를 끌고 세일 상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특정 마트마다 주력 상품이 있기 때문에 순회하듯 두 세 군데를 가는 날도 있다. 필요한 물건도 사고 여전히 이국적인 식재료도 구경하고, 1센트라도 더 저렴하게 샀다는 만족감을 가득품은 채 집에 와서 맛있게 식사를 했다면 그날의 일진은 썩 괜찮은 편에 속한다. 이 정도면 희로애락(喜怒哀樂) 중 희喜와 락樂이라 할 수 있다. 소비의 기쁨과 맛의 즐거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으니 말이다.
문제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가는 마트에서 로怒와 애哀, 즉 분노와 슬픔도 왕왕 일어난다는 것에 있다. 대게 그 원인은 마트 직원에게 있었다. 딱히 항의하기도 구차한 애매한 인종차별들이 나를 때로 노엽게 했고 슬프게도 만들었다. 내 앞사람에게까지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안녕’, ‘좋은 주말 보내’, ‘고마워’ 잘만 친절하게 말하더니 키 작은 동양 아줌마가 계산대에 등판하는 순간 곰살 맞던 표정은 경색되고 입은 지퍼가 달린 듯 굳게 닫아 버린다. 인심좋은 호호아줌마에서 호환마마로 바뀌는 것은 한 순간이다. 솔직히 이 정도는 맷집이 생겨서 상대가 인사를 하든 말든 나 혼자 인사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안녕, 고마워, 좋은 주말 보내, 혼자말 대잔치가 차라리 속 편하다. 나는 당신과 같은 인격체가 아님을 과시하는 일종의 소심한 복수이기도 했다. 이 정도에서 끝나면 좋지만 잔돈을 기분나쁨이 느껴질만큼 툭- 바닥에 떨어뜨려 놓거나, 내가 동전을 센다고 조금이라도 계산이 늦어지면 죽상을 하고 한숨을 쉰다. 한 번은 거스름돈 전체를 10~20센트와 같은 자잘한 잔돈으로만 받은 적도 있다. 뭐하자는 건지?! 무거워서 못 들고 간다고 장난 치냐고 마트를 한 바탕 뒤집고 싶은데 그 말조차 독일어로 구사가 안 될 때 부글부글 열이 끓어올라 넘쳤다. 돌이켜보면 더럽고 치사해서 악을 쓰고 독일어를 배우게 했으니(물론 지금도 유창하지 않지만) 고맙다고 해야 할까. 매번 나는 긍정적인 인간임을 자기 암시화하려 했지만 보살이 아닌 이상 잔 기스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본인이 계산을 잘못해놓고 사과 한 번 없는 것은 다반사, 갑자기 내 에코백만 가방 검사를 하지 않나, 다른 마트에서 산 물건(꽃이었는데;)은 밖에 두고 오라고 혼도 났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도 모르겠으나 이상하게 이런 일들은 맞추기라도 한 듯 독일인 치고는 좀 꾸민(?) 중년 여성들로부터 발생하다보니 웬만하면 젊은 남자가 있는 계산대를 이용하는 이상한 버릇마저 생겼다. 빈번한 에피소드들은 방문수와 비례한다. 매일 밥을 해먹어야 하니 마트를 자주 갈 수 밖에 없고 그렇다 보니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난다. 혹자는 뭔 이런일로 화를 내고 글까지 쓰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일상에서 가장 자주 방문하는 마트와 그곳에서 느끼는 일련의 일들은 의외로 내 의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한국에 살 때는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두 번 대형마트에 가는 것이 다였다. 대부분이 카드 결제고 워낙 서비스를 중요시 하는 나라이다 보니 마트 직원으로부터 부당함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한국은 내 나라였다. 그래서 나는 독일 마트에서 더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사람들이 외국인이라고 무시하는구나, 차별하는구나’ 라는 은연 중에 깔린 피해의식이 스스로를 더 위축되게 만들었다. 단순히 동양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억울했고 이제는 좀 익숙해 질만도 한데 매번 일희일비하는 나도 참 못나보였다. 이렇게 쪼잔한 인간이었나? 태생적으로 밴뎅이 소갈딱지보다 못한 마음 그릇을 가진 소인배는 혼자 집에와서 속알이를 했다. 전생에 소가 아니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자주 되새김질 하며 꼭꼭 곱씹었다.한 번은 누구한테라도 배출해야 되겠다 싶어서 독일인 친구 A에게 블라블라 피해담(?)을 늘어놓았다. 그는 크게 공감하며 솔직히 독일인인 자신도 불친절한 서비스 때문에 기분 나쁠 때가 많다고 했다. 특히 K마트는 더욱이 말이다. 굽기야 그는 며칠 후 나의 사례담들을 담아 마트 고객센터에 항의 이메일을 보냈다. 돌아오는 답이야 뻔했다.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대단히 죄송하며 직원 교육을 잘 시키겠다의 정석적인 편지였다. 오히려 마트 측의 사과보다는 내 마음을 이해해주고 같이 화를 내주며 공감해준 친구에게 받은 감동이 더 컸다. 마트 직원의 냉대는 찰나이지만 A와의 우정은 길 것이다.(문장의 라임상 영원이 어울리겠으나..차마 영원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독일에 와서 읽은 책 중 의외로 힘이 되었던 책은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었다. 여기서 의외라고 표현한 것은 하도 예전에 읽어서 배경이 독일인지도 까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제목 때문에 한국에서 들고 온 이 책은 마찬가지로 제목이 가장 큰 위로를 주었다. 어떤 삶의 모순과 휘청거림도 이 짧은 문장에 대입하면 위로가 됐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여백에는
“난 괜찮아”가 밑바탕으로 깔려 있는 것 같았다.
책에는 “인간의 수명이 70세라고 했을 때 우리는 3천번 울고, 54만번 웃는다”는 대목이 나온다. 54만을 3천으로 나누면 180이란 결과가 나오는데 즉 인간은 180번 웃어야 1번 울 수 있는 동물이란 것이다. 작가의 주장처럼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180때문이다. 생각보다 삶은 울 일 보다 웃을 일이 더 많다. 기억의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독일에서도 울었던 날 보다 웃은 날이 더 많았다. 다만 울었던 날에는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고 웃은 날에는 오히려 에너지를 받았기에 기억이 옅었던 것뿐이다.
마트 직원들 때문에 소소한 기쁨을 누릴 때도 있었다. 처음으로 직원이 말한 액수를 내 귀가 알아들었을 때의 환희는 잊을 수가 없다. 사소하게나마 그들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감동의 물결은 차고 넘쳤다. 딱히 갈 데가 많이 없는 아줌마에게 독일어 회화 실전은 대부분 마트에서 이루어진다. 언젠가는 내가 계산을 마친 후 빠트린 물건이 생각나 다시 집어와 줄을 섰더니 나를 알아보고 먼저 계산 해 주는 직원도 있었고, 바쁜데도 기꺼이 물건을 함께 찾아주는 친절도 자주 받았다. 애석하게도 인간이란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을 더 길-게 품고있는 습성을 갖고 있다보니 마트하면 자동적으로 분노와 슬픔이 떠오른 것이다. 무엇보다 내게는 외국인의 불평불만과 애로사항을 이해해 주는 친구도 있었다. 1번 화났던 일은 180번의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믿어보기로 했다. 그말인 즉 인생에는 슬픔보다 기쁨이 훨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트 직원이 누구든 얼마나 못됐든 휘둘리지 않고 내 갈 길을 가련다. 분노와 슬픔 따위는 겨우 180분의 1의 확률이니까.
**책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에서 인용한 제목이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다음 구절은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이다. 외로움이든, 차별이든, 그 무엇이든.. 휩쓸릴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분명히
.
당신과 나에게는 원하는 대로
세상을 볼 수 있는 힘이 있다.
작가: 여행생활자KAI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는 여행생활자, 주변 살펴보기가 취미인 일상관찰자
본 글은 여행생활자KAI 작가님께서 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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