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는 유대인을 절멸하는 홀로코스트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우수한 아리아인의 혈통 보전과 전파를 위해 ‘레벤스라움(Lebensraum)’이라는 육성 정책을 펼치고 ‘레벤스보른(Lebensborn)’이라는 기관에서 아이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이 기관에서 만들어진 아이들은 독일이 정복한 곳을 다스릴 미래의 지도자들로 성장하기 위해 강인하고 무자비한 스파르타식 생활을 감행해야 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레벤스보른에서 일어났던 비인간적인 만행과 지금은 성인이 된 그 당시 기관에 있던 피해자들은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강간 및 인위적 교배로 아이를 태어나게 했던 기관인 레벤스보른
1935년 나치 독일은 복지단체 ‘레벤스보른’(Lebensborn)을 만들었습니다. ‘생명의 원천’이라는 뜻을 지닌 이곳에서는 나치의 핵심 조직인 무장친위대(SS)의 하인리히 힘러를 주축으로 파란 눈, 금발 머리, 큰 체격의 특징을 가진 순수 혈통의 아리아인을 키워내는 인종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리안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젊은 SS 남녀 단원을 결혼시켜 아이를 많이 낳도록 장려하는 수준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정도가 심해져 인종적으로 순수하다고 판정된 남녀의 교배를 강요하고 아리안의 유전인자가 많이 남았다는 노르웨이에도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이 점령한 국가에서 금발 소녀를 납치해 SS 장교의 씨를 받게 하는 만행도 조직적으로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강간을 포함한 인위적 교배에도 아리안의 특성을 갖지 못한 채 태어나는 아기는 죽음으로 내던져졌습니다. 또한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친부모를 모른 채 보육 시설에서 독일을 위한 충성 시민으로 세뇌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아이들의 대부분은 친위대 가정에 입양돼 길러졌습니다. 이와 같은 비인간적이고 엽기스러운 만행을 통해 얼마나 많은 아이가 태어나고 버려졌는지는 나치가 자료를 없앤 탓에 정확한 통계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1939년 말 8,000여 명의 부모들이 자녀를 2~3명씩은 낳았다는 추정만 있을 뿐입니다.엄격한 규율과 함께 생활했던 레벤스보른의 아이들, 규칙 어길 시 학대당하거나 강제 노역에 시달려
레벤스보른은 나치의 극단적 민족주의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치는 레벤스보른에 들어갈 아이들을 대상으로 인종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나치가 정한 순수 아리아인 특징에 부합하는 아이들은 1·2등급으로 분류되어 친위대장 하인리히 힘러가 직접 운영하는 레벤스보른 프로젝트 시설로 넘겨졌고 3·4등급으로 분류된 아이들은 나치 독일이 만든 재교육수용소로 옮겨졌습니다. 레벤스보른 아이들은 이불에 오줌 싸기, 방귀 뀌기, 손톱 물어뜯기, 자위 등이 금지된 엄격한 감시와 규율과 함께 생활했고 다른 나라에서 데려온 아이들에게는 모국어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이런 행동 때문에 처벌받은 아이들은 강제교육 수용소로 끌려가 학대당하거나 노예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함께 읽으면 좋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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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이후 친위대 조직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에 존재를 숨기고 살아온 레벤스보른의 희생자들
이처럼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나 성인이 된 사람들은 자신이 레벤스보른의 아이라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살아야 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들은 전후 독일의 정치적 분위기에서 비난과 공포의 대상인 친위대 조직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기 어려웠으며 혈통에 대한 히틀러의 집착이 낳은 희생자임과 동시에 독일을 현대 유럽의 강자로 키운 전후 경제 기적의 수혜자들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자신의 친부모를 찾고 레벤스보른의 피해를 보상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피해자들
하지만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많은 레벤스보른의 희생자들이 친부모를 찾고 자신이 나치의 전쟁 범죄가 만든 피해자임을 국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쥐드도이체에 따르면 어린 시절 레벤스보른으로 납치되어 양부모에 의해 자란 독일의 한 남성은 수십 년 동안 친부모를 찾고 있으며 레벤스보른의 피해자 협회는 10년 넘게 국가를 상대로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편 피해자 중 오랜 시간 끝에 친부모를 찾은 사례도 있습니다. 1946년 레벤스보른에서 두 살 무렵 양부모에게 입양된 한 남성은 1984년 적십자의 도움으로 친아버지를 찾았으며 1993년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친어머니를 찾게 되었습니다. 작성: sugiⓒ 구텐탁코리아(//www.gyrocarpu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