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사람인 형부에게는 ‘뮌헨의 외숙모님’이 계신다. 언니와 나는 외숙모님을 거리에서 우연히 두 번이나 만났다. 세상은 좁고, 만날 사람은 어디선가 반드시 만나게 된다는 걸 알았다.언니와 안과를 다녀오던 길에 이태리 형부의 독일 외숙모님을 우연히 만났다. 이 복잡한 관계도라니. 나의 형부이자 우리 언니의 남편은 이태리 사람이다. 형부의 외삼촌도 당연히 이태리 분. 외삼촌이 뮌헨의 옥토버 페스트에 오셨다가 독일분인 외숙모님을 만나 사랑에 빠지셨다는 이야기. 언니도 이태리에 살 때 외숙모님을 몇 번 뵈었다. 말로만 듣던 ‘뮌헨의 외숙모님’이 우리 집과 지하철 역 사이에 이웃으로 계시더라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인연’이란 단어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오데온즈 플라츠에서 뮌헨 시청 앞 마리온 플라츠까지 이어지는 길은 뮌헨의 유명한 쇼핑 거리를 직각으로 가로지르는 쇼핑 거리다. 일명 테아티너 슈트라세 Teatinerstraße. H&M과 자라 Zara 매장마저 명품처럼 보인다. 그 앞에는 당연히 언제나 긴 줄이 있다. 오데온즈 플라츠 쪽으로 더 걸어가면 퓐프 회페 Hünf Höfe라는 멋지고 깔끔한 쇼핑센터도 있다. 외숙모님은 거기서 만났다. 퓐프 회페 앞 노천카페에서. 이틀 전에 별장에서 돌아오셨다고 했다.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언니가 온 지 한 달 남짓 지나 유월 초에도 만났다. 그때도 오스트리아인가 이태리 별장에서 막 돌아온 길이라 했다. 내가 언니와 함께 주치의를 만나러 갈 때였다. 내가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드렸다. 알고 보니 형부의 외숙모님과 내 주치의는 같은 의사였다! 거리에서 짧은 안부를 나누고 주치의 샘 이야기로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그때는 우리가 백신을 맞기 전이라서 그런지 손도 잡지 않고 헤어졌다. 이번에는 달랐다. 노천 테이블에 앉아 주문한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언니가 지나가는 행인들 중 외숙모님을 먼저 알아본 것이다. 뮌헨에 온 지 석 달 만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있다고. 그런데 갑자기 언니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분이 외숙모님이었다. 외숙모님도 우리도 백신을 맞았기에 서로의 손을 잡고 반가움을 나누었다. 나와는 독일어로, 언니와는 이태리어로. 팔순을 앞둔 백발의 단발머리 노부인의 패션은 백바지에 V네크 붉은 꽃무늬 블라우스였다. 흰색의 명품백에 검은색의 단아한 플랫슈즈. 여기 분들에 비해 피부 주름이 적어서 더 생기 있고 젊어 보이셨다. 아, 오래 사시겠구나. 그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지. 외숙모님과 헤어지고 나서 언니와 나눈 대화였다. 외삼촌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슬하에 자식도, 무남 독려라 형제자매도 없으시다. 그러고 보니 우리 힐더가드 어머니랑 비슷하시다. 외동딸에 자녀가 없으심. 다른 점은 힐더가드 어머니에게는 아버님과의 재혼으로 아버님의 세 자녀가 있다는 것. 우리 남편이 그중 막내다. 외숙모님은 재혼도 않으신 채 혼자 사셨다. 유일한 낙은 겨울만 빼고 오스트리아와 이태리의 경계쯤 되는 별장에 가시는 것. 손수 운전을 하셔서 말이다. 무척 독립적이고 건강한 마인드를 가지신 분이다. 건강은? 말하기가 조금 애매하다. 일단 보기엔 건강하시다. 다만 18번의 크고 작은 수술을 하셨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주로 관절 부분인데 허리와 무릎과 손과 기타 등등이다. 본인 입으로 18번이라 하시니 맞을 것이다. 내가 수술을 하고 항암을 한다고 했을 때 유일하게 놀라지 않으신 분이 외숙모님이시다. 그분의 담대한 리액션에 내가 다 놀랄 정도였으니까. 아, 괜찮아요, 괜찮아. 난 열여덟 번이나 수술을 했는 걸! 이게 그분의 대답이었다. 얼마나 쿨하신가! 여든을 앞둔 분에게 오십을 넘은 나는 햇병아리처럼 보일 것이다. 아무 문제 아니다. 이 나이에도 거뜬히 수술을 이겨냈는데. 당신 나이에 뭐가 문제겠느냐. 걱정 말고 잘하라. 이런 뉘앙스로 들렸다. 외숙모님의 이런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암환자를 대하는 전형적인 태도란 게 있다. 우선 무슨 말부터 꺼낼까 고민이 되겠지. 나라도 그럴 것이다. 그런 선을 가볍게 뛰어넘는 사람을 만날 때의 즐거움이란. 그러고 헤어졌으면 말도 안 한다. 또 만났다! 외숙모님을. 다정하게 손 맞잡고 긴 이별의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후에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뮌헨 시청사 오른쪽에 위치한 명품 백화점 루드비히 벡 Ludwig Beck이었다. 나는 여기를 바바라와 한 번, 힐더가드 어머니와 한 번 갔는데, 크고 반듯하고 쾌적하고 럭셔리한 쇼핑 공간이었다. 가격은 말할 바 없이 높았다. 중산층 이상 부인들과 전문직 여성들이 주 고객 같았다. 바바라는 그곳 4층인가 5층 카페에서 뮌헨 시청사 광장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걸 좋아했다. 나도 따라갔다가 테이블이 너무 적어서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힐더가드 어머니는 뮌헨에 오실 때마다 한 번씩 들르시는 것 같다. 지난번에는 거기서 아이의 옷도 사주셨다. 나도 사고 싶은 청바지가 눈에 띄었는데 사달라는 말씀을 드리진 못했다. 애교? 떼? 그게 되는 날 어머니와 나 사이의 바리게이트는 끝. 한번 정도 시도해 볼 생각은 있다. 밑져봐야 본전 아닌가! 아참, 외숙모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백화점 안에서 정확히 어디서 만났냐고? 2층 화장실 입구에서. 내가 먼저 외숙모님을 보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걸 뒤에서 본 언니가 쟤가 대체 왜 저러나 했단다. 외숙모님과 우리는 만면에 웃음을 띈 채 다시 한번 손을 잡으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시내에 나가면 나는 화장실을 몇 군데 생각해두고 있다. 빅투알리엔 마켓 부근에는 토털숍 이탈리 Etaly. 지하 와인 판매소에 화장실이 있다. 마리엔 플라츠에는 갤러리아 백화점 5층 화장실과 루드비히 벡 2층 화장실. (세 곳 다 1인당 50센트 정도 내면 된다. 마리엔 플라츠 지하철 U반/S반 계단 아래에도 공용 화장실이 있다. 1인당 70센트. 기다리는 줄이 길고 환기가 안 되지만 여행자들에게는 반가운 곳이다.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편이다.) 외숙모님과는 두 달 후 시월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곧 별장으로 떠나시기 때문에. 그때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으시다는 이태리 레스토랑 소피아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대접할 생각이다. 레스토랑은 우리 집과 외숙모님 한가운데에 있고, 레스토랑 안쪽 벽에는 소피아 로렌이 양팔 벌여 환영하고 있다. 소피아 로렌의 해바라기는 우리 집 발코니에서 활짝 피어나고 있고.
- 작가: 뮌헨의 마리
뮌헨에 살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북 <프롬 뮤니히><디어 뮤니히><뮌헨의 편지> 등이 있습니다.
- 본 글은 마리 오 작가님께서 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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