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마음속에 어둠이 드리우면
타인과 맺는 관계의 어려움
각자 에게는 자신만의 아킬레스건이 있다.자기 자신에게만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마음의 아킬레스건 말이다. 아킬레스건은 발꿈치 뼈의 뒤쪽 위에 위치한 힘줄로서 그 기능은 *’가자미근과 장딴지근이 수축할 때 강력한 발바닥 굽힘을 일으켜, 걸을 때 몸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달리거나 뛰어오를 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누구든 아킬레스건을 다치면 제대로 걷지도 뛰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 마음에도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관계’라는 키워드 앞에서 한없이 작은 사람이 된다. 나이를 먹으면 연륜이 쌓이면 점차 나아질 줄 알았건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우연히 베를린이라는 타지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관계’라는 아킬레스건은 더욱 팽팽하게 긴장되었고 때로는 움츠러들며 가끔은 제 기능을 상실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마음은 뻣뻣하게 굳고 얼어붙어서 단 하루도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겠다는 절망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스스로 꾹 눌러 참고 있던 어두운 감정은 아주 작은, 무척 사소한 사건들로 인해 활성화된다. 그 감정이 뚜껑을 열고 삐죽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초래되고 내 마음속 아킬레스건은 끊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상태가 되어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돌아가지도 못하게 나의 온몸을 마비시켜 버리기 일쑤였다.
어느 날 아이의 유치원 같은 반 아이 E가 우리 집으로 놀러 왔다.여러 가지 이유들과 핑계들로 이제껏 아이의 친구를 초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나는 무척 긴장이 되었다. 우리 딸은 이미 여러 친구들 집에 수없이 놀러 가고 방문했었지만, 왠지 독일 아이를 우리 집에 초대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어려워서 계속해서 미루고 미뤄왔었다. 게다가 아이의 생일은 늘 유치원 여름 방학 속에 끼여있었고,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더욱 누군가를 초대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E는 우리 아이보다 한 살이 어렸고, 작년에 반이 바뀌면서 새롭게 만나게 된 친구였다. 우연히 놀이터에서 만나 얘기하던 중 E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은 딸이 조르고 졸라서 E를 초대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실은 나에겐 더 부담스럽고 낯설었다. 그녀의 엄마와는 놀이터에서 간단한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였으며 그 전에는 나에게 한 번도 먼저 인사를 건넨 적이 없었다. 디데이. 긴장은 늘 사건을 부른다. 그날 점심을 먹던 E는 유산균 요구르트를 온몸에 쏟았고, 나는 아이의 옷을 빠느라 분주했다. 그동안 E는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고-그때 나는 아이를 집으로 보냈어야만 했다- 심심해하는 아이들을 위해 겨울왕국 2 애니메이션을 틀어주고 말았다. 잠시 후 E의 아빠는 아이를 데리러 왔고 모든 것이 잘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틀어주었다는 사실은 E의 엄마에게는 꽤 불쾌한 일이 되었고, 나는 그에 따른 질책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다. 기분이 상한 듯한 E의 엄마가 보낸 메시지를 받자마자 전화를 걸고 직접 통화를 하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쾌활하지 그지없었지만 내가 잘못한 일과 자신의 교육 철학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순간 마음속 아킬레스건은 점점 뻣뻣하게 굳어갔다.
이제껏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서러움과 속상함이 그만 터져버리고 말았다.어찌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은 그 일이 마음속 깊이 숨겨둔 어두운 감정을 톡 하고 건드린 모양이었다. ‘내가 독일어를 더 잘했다면 이러한 상황에서도 나의 입장을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지 애초에 독일어가 완벽했다면 아이의 친구를 초대하는 일에 그렇게 긴장했을 리가 없지. 나를 매일 영화나 틀어주는 무책임한 엄마로 보았을까? 사실은 영화는 한 달에 한두 번 보여주는 게 전부인데, 매 순간 아이와 놀고 책 읽어주느라 얼마나 힘든데, 왜 나는 바로 그렇게 제대로 말도 못 했을까? 한국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나는 독일 엄마들과 함께 잘 지낼 수 있을까? 아이는 나 때문에 괜히 이상한 아이 취급받지는 않을까?’
별의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동안, 타지에 살면서 켜켜이 쌓인 외로움과 알 수 없는 자격지심들이 나를 서서히 짓눌렀다.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를 꾹 누르면 온 몸으로 물을 쏟아내듯이, 나는 그 자리에서 -심지어 아이가 보는 앞에서-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시원하게 울지 못해서 그런지 내 눈물과 울음은 더욱 서러운 소리를 내며 조용한 집안을 휘감았다. 우리 딸의 입장에서는 꽤나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친구와 잘 놀고 난 후에 소파에 앉아 울고 있는 엄마라니! 도대체 왜 우는 거냐고 물어보는 아이에게 둘러 둘러 이 일에 대해 설명해 주었더니 “그러면 E가 자기 집에서는 영화를 안 본다고 말했어야지! 엄마 잘못이 아니야. 나라면 다 얘기했을 거야.”라고 단번에 얘기했다. 세상에.
만 4세 아이가 통쾌하게 한방을 날렸다. 그제야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살짝 웃을 수 있었다.
마음속의 끝없는 밤, 희미한 별빛과 달빛에만 오롯이 의지한다.
베를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작은 사건은 나에게 큰 질문으로 남았다. 꼬박 일주일을 울며 잠들었다. 내가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 되고, 누군가 이 이야기의 결말을 귀띔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과 새롭게 ‘관계’를 맺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모두들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실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 따라 엄마들은 늘 새로운 단계를 밟아가기 마련이다. 게다가 낯선 문화 속에서 적어도 ‘상식 있고 예의 있는’정도의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 혹은 지양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이 불명확 한가운데 엄마로서, 한 사람으로서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 날을 기점으로 일주일이 훨씬 지난 어느 날, 나는 E의 엄마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내가 E에게 빌려준 옷을 빨아서 직접 가져다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방긋이 웃으며 옷을 건네주는 E의 엄마에게 용기 내어 그날의 일을 끄집어냈다. 여전히 영화를 보여준 것에 대해서는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그래도 내가 E에게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메시지를 전했으니 그걸로 됐다 싶었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결심했다. 내 속의 어두운 생각들과 끝없이 펼쳐지는 머릿속의 질문들을 의지를 갖고 끊어내기로 작정했다.
그 후, 우연히 아이의 유치원 친구 L의 집에 놀러 갔다가 L의 엄마에게 이 일을 털어놓게 되었다. 그녀는 아이의 친구를 초대할 때, ‘미디어’와 ‘달달한 간식거리’, 이 두 가지만 주의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힘들어할 일이 아니라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머리로는 안된다는 걸 알지만 사실은 본인도 L에게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기도 하니, 그냥 쿨하게 넘기란다. 그제야 단단히 굳어 멈춰있던 마음속 아킬레스 힘줄에 천천히 힘이 실렸다.
남 탓할게 아니다.
누군가의 직언을 듣고 한없이 위축되어버리는 나를 돌아볼 일이다. 나의 실수나 치부를 차마 눈감아 줄 수 없었던 나를 위로할 일이다. 누군가가 가지고 있지도 않았을 저의를 파헤치며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던 나를 한번 더 따뜻하게 안아줄 일이다. 이제껏 열변을 토했던 언어와 문화의 차이는 나의 부끄러움을 덮어줄 하나의 포장 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넘어지는 과정 속에 배움도 있다. 아무런 부딪힘 없이 그저 독일 사람들 속에 끼어 들어가려던 내 모습은 한편으로 얼마나 오만했는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자 결심했다. 누구에게 어떤 말을 들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잘못된 점이 있다면 그 부분은 확실히 인정하면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제대로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 자격지심이나 자기 연민의 끝없는 쳇바퀴에서 벗어나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한다.
- 작가: KIRIMI/KiRiMi 일러스트레이터
베를린에서 살아가는 삶 –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득 영감을 받아 무작정 기록해보는 진솔한 이야기. - 본 글은 KIRIMI 작가님께서 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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