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더운 여름 33도를 웃돌고 있고, 나와 7살 아들은 드레스덴에서 놀이터 프로젝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날이다.
7시간 거리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기차역에 왔는데 우리의 기차 스케줄이 취소되었다.
(독일에선 종종 일어나는 일이긴 하다)
머리를 휘리릭 급하게 굴리고, Flixbus를 타고 뉘른베르크까지 가서 기차를 타고 잉골슈타트에서 갈아타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하여 무거운 짐들을 들고 버스정류장을 찾아가 보니 버스가 엄청 많다. 그런데 행선지는 안 적혀있다.
드디어 무사히 버스를 탔고, 이제 5시간을 달리면 된다. 기차 두 번 갈아타는 건 나중에 걱정하자.
뉘른베르크 도착 2시간 전에 어느 한적한 곳에 버스가 멈춰 섰다. 어딘지는 당연히 모른다. 15분의 쉬는 시간을 준다. 우리는 보따리에 싸온 샌드위치를 나눠 먹었고, 그 쉬는 시간이 악몽이 될 줄은 샌드위치 먹는 동안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경찰이 버스에 탑승하여 신분증 검사를 했다. 국경을 지날 때를 제외하고 독일 내에서 이동할 때 나는 여권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편이다. 특별히 문제가 없었으므로…? 왜 하는거지? 테러인가?
내 차례가 되었고, 여권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사진 찍은 걸로 대체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사진과 더불어 보험 카드도 함께 보여주었다.
이름과 여권번호 등을 잘 읽을 수 있게 사진을 크게 보여달라는데 이 놈의 핸드폰은 그 순간 말을 안들어서 확대가 되지 않고, 심장이 쪼그라든 나는 노트북에서 찾아서 보여주겠다며 컴퓨터를 검색하는데.. 이 놈의 노트북은, 아니 내 기억력이 작동을 잘 안 해서 어디 있는지 제대로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미 얼굴이 뜨거워지고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어라? 경찰은 알겠다고 하고 지나갔다.
휴~~ 하느님, 감사합니다. 기도를 하고 한숨을 퓨~ 하고 편하게 앉는 자세로 고치자, 바로 경찰은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알겠다는 게 알았던 게 아니였던 것이다.
여권번호와 상세정보를 기입한 후, 중앙정보국인지 어디로 전화를 걸어 신분을 확인한다고 했다.뭐? 안기부?
그래, 그러면 확인될 테니 문제없겠지. 안도의 한숨을 다시 퓨~
그런데, 정보국에서 나는, 정확히 말해서 우리 둘은 비자가 없는 상태로 나온다고 한다. 헐……..
“나 거주비자 있다. 베를린 외국인청에 확인해봐라.”
경찰: “최소한 비자가 찍힌 사진이라도 보여줘야 한다. 그냥 말은 믿을 수가 없다..”
주위에선 나를 테러리스트로 보는 시선까지 느껴진다.
비자를 찍어둔 게 있나? 없는데… 프랑크푸르트의 한 지인에게 보낸 적이 있었던가? 전화를 해 보니 연결이 안된다…
버스기사는 오래 기다릴 수가 없다고 다른 승객들도 있기 때문에 출발해야 한다고 성질낸다.
경찰은 무표정으로 말한다.
“당신이 사진이라도 보여주지 못하면 경찰차를 타고 경찰서를 가야 하고, 확인이 될 때까지 구금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확인이 되면 알아서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매정하기 짝이 없다.
여기가 어느 도시인지도 모르고, 짐은 많고, 강민이가 놀랄 텐데. 1시간 후면 장대비가 쏟아진다는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살아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 단 한 명에게 보낸 적이 있다.
노이부르크 처음 초대했던 시청 관계자 왠수 같은 그 사람에게 1년전에 보냈던 기억이 났다. 진짜 싫지만 전화를 걸었다. 살아남는 게 우선이니까..
역시, 그 왠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왠수는 영원한 왠수인갑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짓고 살면 미안해서 다시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 아마도 그도 그러할 듯. 이해한다. 그런데 우린 살아야 한다.
미친 듯이 다시 사진을 찾기 시작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두 눈동자와 광클릭의 검지 손가락은 부탁한 시간 5분 중 1분을 남긴 시점에 드디어 제 할일을 해내고 말았다! 거주비자를 찍은 사진을 찾아냈다!
하느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찰들은 시간을 기다려주겠다고 대답은 해 놓고, 뒤에서 이미 나와 내 아이가 경찰서에 가는 세팅을 하고 있었다. 달려가서 사진을 확대해서 보여주고, 정확한 유효 날짜를 확인하고는 나를 돌려보내 주었다.
“외국인청에서 컴퓨터에 입력을 안 했나 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사진이 없었더라면 저희는 어쩔 수 없이 당신을 경찰서로 데려가야 했거든요.”
헐~~ 이게 말이야, 호빵이야??!
버스로 돌아와 자리에 가보니 노트북으로 영화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는 내 아들..
엄마가 어떤 악몽을 꾸고 왔는지 전혀 모르는 천진난만한 녀석을 꼭 끌어안고는 다짐했다.
- 작가: 이연재/기획자
독일과 한국에서 놀이터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쉬고 노는 곳을 연구합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관찰합니다.
- 본 글은 이연재 작가님께서 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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