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에게
안녕, 은아! 오랜만이야. 네가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당장이라도 달려가 보고 싶었지만, 태어난 지 한 달도 안된 아기를 보며 마음을 꾹꾹 누르느라 힘들었다. 예전에는 언제든 약속을 잡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쉽게 외출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어. 그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엄마가 됐기 때문이겠지?
너와 나는 20대, 멋진 꿈을 갖고 도전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지. 지금 우리의 모습은 많이 달라진 것 같아. 나는 이제 곧 30대가 되고, 멋진 꿈을 갖고 도전하기보다는 지금은 ‘육아’에 전념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어. 내가 엄마가 됐다니 정말 믿기지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옆에 아기가 누워있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기를 낳을 때까지 내 인생에 정말 많은 굴곡이 찾아왔었다. 그 과정을 겪었기에 내가 육아하는 시간을 힘들어하지 않고,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
20대 가장 예쁠 때 결혼한 나는 3개월 만에 임신을 했어. 아기를 가질 생각이 있었지만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아기가 생길 줄 몰랐어.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그어져 있을 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더라. 그렇게 가족들한테도 알리고 지인들한테도 하나 둘 알리기 시작했지. 산부인과에 갈 때는 너무 행복했던 것 같아. 선생님도 엄마, 아빠가 젊으니 아기도 건강하다는 이야기를 항상 해주셨어.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20대 때 아기를 낳으면 정말 건강하게 태어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여느 때와 같이 산부인과를 찾았는데 접수하는 카운터에서 내 담당 의사 선생님이 그만두셨다는 거야. 그래서 언제 그만두셨냐고 여쭤보니까 어제 그만두셨다고 하더라고. 왜 미리 공지를 안 해줬냐고 했더니 산부인과 관련 카페에만 공지를 하고 환자들에게는 따로 공지를 안 했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오늘 콤플 레인 많이 받았다고 하시는데 할 말이 없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게 됐어.
진료를 시작하기 전 초음파를 봐주시는 분이 하나하나 꼼꼼히 봐주기 시작했어. 아기 손가락, 발가락, 심장, 폐, 각종 기관들, 얼굴, 몸 등등 자세히 봐주시더라고.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폐랑 심장을 계속 보시는 거아. 우심방, 우심실, 좌심방, 좌심실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보고, 혈류가 잘 흐르네요.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셨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평소에도 워낙 꼼꼼히 봐주시던 분이기에 별다른 의심을 안 했던 것 같아.
그렇게 긴 시간 초음파가 끝나고 바뀐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으러 들어갔어. 처음 보는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은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살짝 냉소적인 표정을 짓고 계셨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잔뜩 긴장이 되더라. 한참 모니터를 보시던 선생님은 우리를 보시더니 이렇게 말하시더라.
엄마가 된 스토리가 쓰다 보니 길어졌다. 이 글을 나중에 읽게 된다면 기분이 이상할 것 같아. 출산 때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를 것 같기도 하고 ㅎㅎㅎ 난 이렇게 엄마가 됐어. 내 세계에 책임져야 할 강한 생명체가 생긴 거지. 아기를 보고 있으면 좋은 거 많이 해주고 싶고, 좋은 경험 많이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 영화 소울에서 멘토가 멘티에게 인생에 소중한 순간들을 선물하듯이 나도 아기에게 내가 사랑하는 순간들을 소개해주고 싶어. 인생의 가이드로서. 그렇게 멋진 엄마가 되고 싶다.
아기 폐에 혹이 보입니다.
큰 병원, 대학 병원 가셔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차일피일 검사 일정을 미룰 게 아니라
오늘내일 중으로 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예상치 못한 선생님의 말에 나는 너무 놀랐어. 남편도 놀랐는지 다시 한번 묻더라. ‘아기에게 흔히 보이는 증상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선생님은 ‘흔하지는 않죠’라는 말로 대답했어. 나는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더라. 너무나 작은 아기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눈물부터 났어. 의심되는 병 이름을 말해주시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눈물만 나더라고. 우린 건강하니까. 우리 아기도 건강할 거야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었는데 아기가 아프다고 하니까 내가 잘못한 것 같고 불안한 생각이 나를 짓눌렀어. 의사 선생님은 소견서가 있어야 대학 병원에 갈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고, 소견서를 써주셨어. 진정하지 못하는 나 대신 남편이 대학 병원에 전화를 해줬는데 당일에는 예약이 어렵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다음날 예약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어.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제대로 된 검사를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하루 종일 눈물만 나더라. 남편도 많이 놀랐을 텐데 우선 내일 대학 병원 가면 다 알게 될 거라고 나를 많이 다독여줬어. 부모님한테도 알려야 할까 고민했지만 정확한 병명이나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듣지 못하고서 걱정만 드리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서로 약속을 했었어. 일단 대학 병원 가서 정확하게 듣고 부모님께 알리자고.. 이렇게 말한 우리 둘은 반응이 달랐는데 나는 정말 부모님께 전화를 하지 않았고, 하루 종일 울기만 했어. 남편은 혼자 감당하기 너무 힘들었는지 부모님께 소식을 알렸더라고. 그리곤 나에게 눈물을 안 보이려고 노력했어. 너무 마음이 불안하니까 인터넷에 ‘아기 폐 혹’을 몇 번을 검색했는지 몰라.
그렇게 다음날이 되자 우리는 바로 대학 병원으로 향했어. 산부인과 담당 교수님은 아기 폐 혹이 원래 초음파 상으로 잘 안 보이는데 동네 산부인과에서 본 게 신기하다며 우선 초음파로 검사해보자고 하시더라고. 그렇게 초음파 검사를 했더니 폐에 3cm 혹이 있었고, 병명은 ccam이라는 질병이었어. 아기에게 나타날 확률은 정말 극히 드문 케이스라고 하셨어. 그러면서 관련 의학 서적을 꺼내서 ccam에 관해 설명을 해주시더라.
ccam
선천성 낭성 선종 양기형. 한쪽 폐의 국소에 다수의 낭이 형성되는 선천성 형성 이상을 말한다.
ccam의 경우 아기마다 증상이 조금씩 다 다르게 나타나는데 일부 아기들의 경우 혹 때문에 심장이 밀리거나 폐가 제 기능을 못하는 아기들도 있대. 그래서 그런 아기들은 아산 병원에 바로 보내서 지켜보다가 출산을 한다고 하셨어. 내 아기의 경우는 폐에 혹은 있지만 폐가 정상 기능을 하고 있고, 심장도 정상 기능을 하고 있고 어디 하나 치우친 데 없이 건강한 상태니 우선 일주일마다 대학 병원에 와서 관찰을 하자고 하시더라고.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치료가 없고, 아기를 출산한 다음에 수술을 받는 게 좋다고 하셨어. 폐의 혹은 나중에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조금 있기 때문에 대부분 폐의 혹을 제거한다고 하더라. ‘암’이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났지만 수술하면 예후가 대부분 좋다고 하셨어. 그래서 조금 안심했지.
교수님은 긴장한 우리를 풀어주기 위해 농담도 하셨는데… 대학 병원에 고위험 임산부만 오다 보니까 나이 때가 있으신 분들이 많이 오나 봐. 이렇게 젊은 사람들은 오랜만에 본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아기 다섯 명까지 낳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어. 그 말에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지만, 농담해주시고 긴장한 우리를 풀어주시는 모습에서 참 감사함을 느꼈던 것 같아. 전날에 많이 울어서일까? 눈이 퉁퉁 부어서 갔는데 교수님이 ‘엄마가 안 우는 게 가장 중요해요’라고 말씀하시면서 마음 단단히 가지라고 해주시더라고.
교수님의 말처럼 마음을 단단하게 먹기까지는 사실 많은 시간이 걸렸어. 부모님에게 말씀드리는 것조차 눈물이 너무 나서 힘들었고, 마음이 너무 무거웠던 것 같아. 꾸역꾸역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몇 날 며칠을 계속 울면서 보냈다. 남편이 뱃속의 아기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자고 했는데 ‘내 모습 이대로 사랑하시네’라는 찬양을 부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주변에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기도 부탁을 정말 많이 했어. 나 혼자서는 정말 감당을 못할 것 같았거든. 그렇게 하루하루 눈물로 버티고 조금은 단단해지는 시간들을 가졌어.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 대학병원 진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나는 항상 궁금한 점을 수첩에 적어갔었는데. 그날도 빼곡히 질문을 적어갔을 때였어.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다 친절히 대답해주셨고, 마지막에는 이런 말을 붙이시더라.
아기들은 생각보다 강해요.
엄마 뱃속에서 아기가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튼튼하게 창조하셨어요
기독교라고 직접적으로 밝힌 적은 없었는데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많은 위로를 받았어. 예기치 못한 사람에게 위로를 받은 기분이랄까. 좋은 교수님을 만나 뵙게 된 것도 참 감사하더라. 이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힘을 받으며 마음을 굳게 먹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시간이 흘러 어느덧 38주가 되더라. 자궁문이 1도 안 열렸다는 말에 나는 꽤 낙심했었어. 나보다 3달 먼저 출산한 친구는 자궁문이 38주에. 3cm가 열렸다고 했었거든. 그래서 아기가 언제 나올까 많이 조급해졌던 것 같아. 그러다가 친구 한 명이 놀러 왔는데 회사 지인 분이 계단을 올라서 순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래서 나도 그날부터 3일간 계단을 한 번씩 올랐어. 계단을 올랐던 게 몸에 무리를 줘서 일까? 나는 39주에 양수가 터져서 병원에 갔어.
교수님이 진통이 일정하게 반복될 때, 양수가 터졌을 때는 꼭 병원에 오라고 하셨는데 그중 하나가 걸린 거지. 양수가 터진 느낌은 아래에서 갑자기 따뜻한 물이 조르르르르 새는 느낌이었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왈칵하면서 또 물이 나왔어. 혹시 몰라서 대학 병원에 전화를 해봤더니 누워보라고 하시더라고. 그리고 기침을 크게 해 보라고 하셨어. 그랬더니 배에서 또 한 번 왈칵하더니 갈색 덩어리 점액질과 물이 나오더라. 그대로 설명해 드리니 바로 병원에 오라고 하셨어. 남편과 나는 떨리는 마음을 안고 대학 병원으로 바로 가게 됐어.
가자마자 터진 게 양수가 맞는지 검사를 했고, 자궁 수축 검사를 했어. 양수인 것이 확인됐고, 자궁 수축도 일정하게 있어서 24시간 이내에 나올 것 같다고 바로 입원하라고 하더라. 그렇게 바로 입원을 했고, 남편은 다음날 들어오기로 하고 병실에서 하룻밤을 보냈어. 양수가 터져서 아기가 위험에 노출될 수 있어서 아침, 저녁으로 항생제를 맞았지. 병원 안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나갈 엄두가 안 나더라. 왜냐하면 일어서서 걷는 내내 양수가 새고 갈색 점액질이 나왔거든. 그렇게 계속 진통이 오기만을 기다렸어.
그런데… 60시간 동안 진통이 오지 않는 거야. 정말 마음이 불안해졌어. 선생님들이 내진을 봐주실 때마다 ‘진통 왔어요?’라고 물어보는데 나는 첫날에 비해 진통 강도가 세지 않고 일정하지도 않았어. 진통은 오지 않고, 아기는 태어나면 양수가 터진 것 때문에 이것저것 검사를 해야 해서 신생아 중환자실로 가야 한다고 하니 너무 걱정이 되더라. ccam 때문에 원래 출산하면 바로 신생아 중환자실로 가는 거였지만, 양수가 터진 것으로 인해 아기가 해야 할 검사가 늘어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어.
유도분만을 하기로 한 당일 담당 선생님들이 들어와서 유도 분만을 해도 오늘 못 낳을 수 있다, 3일 동안 유도 분만하신 분도 봤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 나도 마음이 너무 힘들었나 봐. 아기를 만날 생각에 기대하고 왔는데 계속되는 기다림에 조금 마음이 힘들었나 봐.
60시간이 지나고 결국 유도 분만을 위해 촉진제를 맞기 시작했는데 촉진제를 맞자 바로 진통이 오기 시작하더라. 그렇게 6시간 동안 진진통을 겪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생리통 심했을 때보다 더 심각할 정도로 배가 아파오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1톤 트럭이 내 배를 누르는 기분이더라.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었어. ‘엄마’를 계속 찾게 되고, 병실이 떠나가라 ‘무통 주사 놔주세요’, ‘너무 아프다’, ‘살려주세요’를 반복하게 되더라. 유튜브에서 진통을 완화하는 호흡법을 보고 갔는데 전혀 생각이 안 났어. 그저 1분마다 찾아오는 진통에 정말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꼈어. 내가 갔던 대학 병원의 경우 자궁문이 7cm가 열렸을 때 무통 주사를 놔줬는데 그전까지 정말 고통이더라. 5시간을 무통 주사 없이 버티려는데 정말 죽을 맛이었어. 호흡조차 안 돼서 남편이 옆에서 계속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해서 말해줬어.
그렇게 7cm 문이 열렸고, 나는 그때 가족 분만실로 옮겨졌어. 거기 가서도 무통 주사를 맞기까지 한참을 기다렸는데 내가 정말 못 버티겠는 순간 ‘무통 빨리 놔주세요’ 소리를 지르니까 그때 달려와서 무통 주사를 놔주셨어. 내가 그전에 얼마나 아팠는지 무통 주사를 맞고 10초도 안 돼서 ‘무통 주사 맞았는데 왜 똑같이 아파요’하고 계속 아프다고 했나 봐.
무통 주사를 맞고 나니 통증은 많이 완화됐는데 계속 똥이 나올 것 같이 항문에 힘이 들어가더라. 그래서 계속 배에 힘들어간다고 말씀드렸더니 아기가 내려오는 중이라고 말해주시더라고. 호흡을 잘해야 아기에게 전달된다고 해서 호흡을 열심히 하라고 하시는데 계속되는 통증에 호흡 조차 제대로 안됐어. 결국 내가 숨을 잘 못 쉬니까 산소 호흡기를 끼게 되더라. 아기가 어느 정도 내려오자 담당 교수님이 분만실로 오셨어. 아기가 많이 내려와 있다고 같이 힘내 보자고 하시더라. 그때부터 힘주기에 들어갔어. 교수님과 옆에 계신 선생님들이 10초를 세는 동안 힘을 빼지 않고 힘을 주는 거였어. 처음에 어디에 힘을 줘야 하는지 몰라서 계속 항문에 힘을 줬는데 그쪽이 아니라 배 코어 쪽에 힘을 주는 거더라. 그렇게 해야 아기가 내려올 수 있나 봐. 아기가 많이 내려왔을 때는 수박이 껴있는 기분이었어. 내가 수박을 낳는 건가.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엄청나게 큰 무언가가 내 몸에서 나오는 기분이 들더라.
그렇게 아기가 세상에 나왔어. 아기가 나오는 순간 엄청 멍해지더라. 그리고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려고 했어. 처음에는 울음소리가 안 나다가 교수님이 아기 몸을 닦아주니까 아기가 조그맣게 ‘응애’하고 울더라. 내 가슴에 아기를 올려주시는데 그 순간 정말 감동이었어. ‘아가야 고생했어’ 이렇게 말하니 교수님이 ‘엄마가 더 고생했지’ 이렇게 말씀해주시더라.
아가는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우리는 3일 동안 아가 얼굴을 볼 수 없었어. 양수로 인한 검사와 ccam 검사를 진행했지. 너무 보고 싶어서 간호사 선생님들께 아기 사진 찍어 달라고 부탁도 하고 그랬다 ㅎㅎ 3일 뒤에 만난 아기는 사진보다 훨씬 작았어. 작고 소중한 존재가 나에게 생기니 막중한 책임감이 생기더라.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됐어.
임신, 출산하면서 크고 작은 이슈들이 있었는데 그 과정을 무사히 넘어온 것 같아 참 감사하고 기쁘다. 우리 아가는 이제 돌 지나고 나서 큰 병원에 가서 ccam 관련 CT를 찍고, 수술을 할 예정이야. 그때까지 잘 키우고 건강하게 수술시키려고. 응원해줘.
엄마가 된 스토리가 쓰다 보니 길어졌다. 이 글을 나중에 읽게 된다면 기분이 이상할 것 같아. 출산 때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를 것 같기도 하고 ㅎㅎㅎ 난 이렇게 엄마가 됐어. 내 세계에 책임져야 할 강한 생명체가 생긴 거지. 아기를 보고 있으면 좋은 거 많이 해주고 싶고, 좋은 경험 많이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 영화 소울에서 멘토가 멘티에게 인생에 소중한 순간들을 선물하듯이 나도 아기에게 내가 사랑하는 순간들을 소개해주고 싶어. 인생의 가이드로서. 그렇게 멋진 엄마가 되고 싶다.
- 작가: 은잎 / 방송작가
6년차 방송 작가이자, 기업 작가입니다. 삶의 권태로운 시기를 벗어나고 싶어 글을 씁니다.
- 본 글은 은잎 작가님께서 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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