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의 역사, 성 평등 언어(Geschlechtergerechte Sprache)
독일의 성 평등 언어의 기원을 찾기 위해선 197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973년 영어권에서 첫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고, 1970년대 중반에는 독일에서도 언어학적으로 남성을 표준으로 삼는 것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1979년,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유엔 협약이 채택되었습니다. 젠타 트룀멜 플뢰츠(Senta Trömel-Plötz) 교수는 여성주의 언어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성차별적 언어 사용을 피하기 위한 지침을 내세웠습니다.언어에서 드러나는 사회 구조
여성주의 언어학에서는 단순히 남성형이 표준이 되는 것만 비판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언어는 소통에 활용되는 도구로,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즉, 단어가 사용 및 이해되는 방식을 통해 사회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가씨와 비슷한 느낌을 지닌 프로이라인(Fräulein)은 대표적인 단어입니다. 현재는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여성이라는 프라우(Frau)의 축소형입니다. 먼저 남성을 뜻하는 헤어(Herr)에는 이러한 축소형이 없다는 것, 축소형인 프로이라인이 서비스업의 종업원을 뜻하거나 나이와 관계없이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지칭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차별입니다. 이 밖에도 „그녀는 완전 남성스럽다(Sie ist ein ganzer Kerl)“는 말은 지위가 높은 여성을 뜻하고, „너는 여자처럼 행동한다(Du benimmst dich wie ein Mädchen)“가 남성에게 나쁜 의미로 들린다는 것. 대조적인 이 두 문장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각각 사회에 이처럼 다른 온도로 다가오는 것입니다.독일어에서의 성 평등 언어 규정
1980년대부터 구축된 성 평등 언어 규정은 꾸준한 토론과 협의를 통해 지금에 도달했습니다. 이름 앞에 붙는 부인(Dame), 아가씨(Fräulein) 등의 단어를 없애는 한편 직업에도 여성형이 생겼습니다. 또한 누군가의 아내, 가족 등으로 지칭하는 관습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대표적으로 간호사(Krankenschwester)에서 간호원(Krankenpfleger/-in)으로 바뀐 것입니다. 과거의 간호사라는 단어에는 여성 형제를 가리키는 단어 슈베스터(Schwester)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여성의 직업이라는 편견이 굳어졌습니다. 이를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해당하는 단어로 바꾼 것입니다.
초반의 노력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탄화하는데 기여했다면, 현재는 모든 사람이 편안한 공원이 되도록 식물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독일어권 나라가 결성한 독일어 맞춤법 협의회에서는 기존 성 평등 언어 규정에 7가지 사항을 추가했습니다. 추가된 사항의 기준은 „모든 사람은 성별에 민감한 언어로 대우받아야 하며, 민감하게 다루어야 한다“입니다.
가능한 단어와 불가능한 단어
최근 추가된 7가지 사항에는 이해가 쉽고, 읽을 수 있으며, 문법적으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법적 확실성을 보장하는 방식만 인정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친애하는 신사와 숙녀에게(Sehr geehrte Damen und Herren)는 사용이 가능합니다. 양성을 두루 아우르기 때문입니다. 기존 단어 중 이미 여성형이 있는 경우 학생(Schülerinnen und Schüler), 손님(Kundinnen und Kunden) 등이 그 예입니다.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는 동료라는 단어인데, 남성(Kolleg)과 여성(Kollegin)의 형태가 달라 결합을 위해선 Kolleg-/-inn-/-en 이처럼 복잡한 형태가 됩니다. 움라우트도 방해가 됩니다. 의사도 여성(Ärztin)과 남성(Arzt)이 크게 다릅니다. 그래서 Arzt/-in, Ärzt/-in, 처럼 너무 긴 문장이 됩니다. 또한 공식 문서에서 슬래시(/)는 권장하지만 언더바(_) 사용이나 별(*)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단어를 짧게 줄일 수 있고, 공식 문서에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더바는 기존 언어 기호에 잘 사용되지 않고, 별은 여성만 지칭하는 단어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 밖에 자세한 내용은 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여전한 논쟁, 성 평등 언어는 정말 필요할까?
첫 논란 이후 50년, 독일은 꾸준한 변화를 거쳐 이 자리에 왔습니다. 하지만 성 평등 언어 운동이 시작부터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굳이 인위적으로 단어를 바꾸고 배포하고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불만도 상당했습니다. 굳이 길어진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 협회 내에서도 완벽한 합의에 이르지 못해 혼란이 계속된다는 점이 대표적인 이유입니다. 또한 여성과 남성이 아닌 제3의 성을 표기하며, 이를 단어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움직임과 그 반대에서 불필요하다는 입장도 있습니다.지난 2020년 초 한 홍보대행사에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45%가 성 평등 언어의 사용은 불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53%의 응답자는 중요하다고 평가했습니다. 한편 2021년 공영방송국인 ZDF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26%만 미디어에서의 성 평등 언어 사용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성 평등 언어의 중요성을 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서울시가 발간한 은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단어를 다시 바라보게 만듭니다. 기존에 사용하는 단어를 바꿔가는 것은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또한, 이 같은 개인적 노력이 단어 변화에 얼마나 큰 변수가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다음 세대가 어떤 단어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는 현재 그러한 노력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작성: 알덴테 도마도 ⓒ 구텐탁코리아(//www.gyrocarpu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