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동전
작은아이가 공터에서 놀다가 동전을 주웠다. 남편은 길에서 동전을 줍지 않는다. 어려운 분들이 주워 갈 수 있게 놔둬야 한다는 주의다. 하지만 아이가 애써 자랑하려고 가져온 걸 다시 바닥에 놓아두라고 하긴 좀 그랬다. 네가 가져온 이 동그랗고 반짝이는 물건이 뭔지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음아, 이거 뭔지 알아?”
“코인.”
그러자 옆에서 남편이 한 마디 거들었다.
“우와, 1센트도 아니고 2센트 짜리네?”
아이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자기가 훌륭한 일을 했나 보다 하는 오묘한 표정으로 서 있다.
“이걸로 나중에 슈퍼마켓 가서 아이스크림 사 먹을까?”
그러자 아이 얼굴에 해님이 떴다. 그 표정이라니. 작디작은 눈동자에 기쁨과 놀라움이 걸리는 순간을 목격하는 일은 늘 즐겁다. 자기가 주운 이 동그란 물건이 그런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는 굉장히 애지중지하기 시작했다. 손에 쥐고 어쩔 줄 모르며 어루만진다. 잘하면 뽀뽀도 할 것 같은 분위기다.
“더러울 수 있으니까 일단은 주머니에 넣어서 가자.”
아이는 중간중간 멈춰 서서 몇 번이고 주머니를 확인하며 돌아와서는 깨끗이 비눗물에 씻어 말렸다. 그리고 이 동전이 나에게 가져다 줄 달콤한 미래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또 내가 이 물건을 사는 것이 나와 이 세상에 어떤 의미를 갖는 일인지 알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결국, 소비할 때 사유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벌지 않고도 살 수 있지만 사지 않고 살긴 어렵다. 인생을 산다(live)와 물건을 산다(consume)가 우리말로 다르지 않은 건 그래서 내겐 꽤 의미심장하다.
관대한 사람은 고귀한 일을 위하여 주며, 올바르게 주는 사람이다. 줄 만한 사람에게, 줄 만한 양을, 줄 만한 때에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서 주는 사람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때론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줄 만한 사람에게, 줄 만한 양을, 줄 만한 때에” 주라니. 이건 마치 “고사리나물 어떻게 하는 거야?” 하고 물었을 때 “응, 푹 불려서 삶은 다음에 갖은양념 적당히 넣고 잘 버무렸다 달달 볶으면 되지.”라고 대답하는 엄마를 볼 때의 느낌이다. 그래도 “줄 때 기쁜 마음으로, 고통 없이 주는 사람”이라는 부분은 알 것 같다. 우리에게는 모두 그런 경험들이 있지 않은가. 내 돈을 쓰면서, 특히 타인에게 쓰면서도 행복하고 뿌듯하고 기뻤던 경험. 돈 참 잘 쓴 것 같다, 그렇게 느껴지던 경험들.
관대한 사람은 주는 일과 취하는 일을 올바로 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취할 곳에서 마땅한 양을 취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 부분이 좋았다. 관대하다고 하면 주는 쪽으로만 이해하기 쉬운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취하는 일을 올바로 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당연히 취할 곳에서 마땅한 양을 취하라” 한다. 즉 내가 가치 있게 노동을 했으면 그 대가를 적절히 받는 것이 돈에 있어서 미덕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세상에는 인연이나 친분에 기대어 너무나 당연하게 타인의 능력과 시간을 내 것처럼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열정 페이라는 고약한 소리로 젊은이들의 찬란한 시간과 빛나는 재능을 가책 없이 꿀꺽 삼키려는 어른들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이, 당연히 취할 곳에서는 똑 부러지게 마땅한 양을 취하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미덕이라는 말에도 십분 공감한다.
친한 사이에 일을 부탁할수록 감사의 마음을 제대로 표시하고, 합당한 보수를 제공하는 게 기본이라는 사실을 나도 참 뒤늦게 깨달은 편이다. 내가 먼저 마음이 우러나서 흔쾌히 해 주면 몰라도, “우리 사이에 이런 것도 못 해주냐”는 말은 세상을 살면서 딱 듣기 싫은 말 중 하나다. 당연히 여기지 말고 제대로 부탁해야 한다. 또, 그저 기회를 얻는 것이 기뻐서 돈에 관한 질문을 주저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아야 한다. 이것은 사실 사회에 이미 점을 찍고 자리를 잡은 어른들이 제대로 된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놈이 벌써부터 돈만 밝히고 쯧쯧”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사실 그게 당연한 거다.
관대한 사람은 그 재물로 남을 돕고자 하므로 자신의 소유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줄 만한 사람들에게 주어야 할 때에 줄 것을 지니고 있기 위해서.
관대한 사람이 곧 부유한 사람은 아니며, 오히려 부유하기가 쉽지 않다. 관대함이란 주는 액수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는 사람의 성품에 달려 있다. 즉, 자기 재산 정도에 따라 당연한 일에 재물을 쓰는 사람이 관대하고 관후한 사람이다.
관대한 사람은 막 주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소유물을 소홀히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꼭 필요할 때 좋은 곳에 쓰기 위해서.
또 꼭 돈이 많아야 관대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자기의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그 정도에 따라서 당연하고 좋은 일에 재물을 쓰는 사람이 바로 돈에 대한 미덕을 갖춘 사람이다. 예를 들면 평소에는 얼마 안 되는 용돈을 꽤 소중히 여기지만 친구가 곤란해할 때 선뜻 자기가 가진 동전을 내어줄 수 있는 아이, 거리의 음악가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했을 때 기쁘게 감상한 후 다가가서 소중한 동전을 넣고 오는 아이, 이런 아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 할아버지가 흡족해하지 않을까.
관대한 사람은 올바르지 못하게 소비하는 일이 있으면 괴로워한다. 또 취해서는 안 될 데서 취하지 않는다. 어디서 어떻게 취하는지를 문제 삼지 않고 어디서든지 무턱대고 취하는 사람은 방탕하거나 인색한 사람이다. 그들은 가난해야 할 사람을 부유하게 하며,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며, 아첨하는 자나 쾌락을 주는 자에게 많은 것을 준다.
이 부분도 참 좋았다. “올바르게 소비하지 못하면 괴로워하고, 취하지 않아야 할 곳에서는 취하지 않는 것.”
나부터 연습해야 할 부분이고, 아이들에게도 꼭 알려주고 싶은 부분이다.
요즘은 특히 올바른 소비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 어떤 식으로 돈을 벌고, 또 어떤 식으로 돈을 쓰며 살 것인가. 아이들과 함께 자라며 부지런히 연습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이에게 바라는 것들
경제관념이 제대로 박히지 않은 내가 아이들에게 그런 걸 가르치고 또 좋은 경제관념을 가지기를 소망한다는 일이 참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마음과 다짐을 담아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쓴다.
나는 아이들이 부자가 되기보다는 돈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돈을 가치 있게 쓰고 소중하게 다루되, 세상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도 많음을 알았으면 한다.
자라면서 아이들은 친구가 입은 멋진 옷, 타인이 가진 멋진 물건에 혹하게 될 것이다. 실은 엄마도 최근 발을 들인 반짝이는 인스타 세상에서 매일 눈으로 침을 뚝뚝 떨어뜨리며 다닌다.
하지만 두른 것의 가치보다는 내 안에 든 것의 무게를 신경 쓰는 사람이면 좋겠다.
내가 소유하고 싶은 욕망보다는,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에게 딱 알맞은 물건을 선물하고 싶은 깜찍한 마음에 더 열심히 돈을 버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는 아이들이 물건을 함부로 사지 않고 내가 만들어 내는 쓰레기에 민감한 사람이면 좋겠다.
나의 경제 규모에 맞고 내 취향에 부합하는 질 좋은 상품을 구입할 줄 아는 그런 눈 밝은 사람이면 좋겠고, 한 번 산 물건을 함부로 쓰레기통에 넣지 않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늘 새 것에만 혹하지 말고, 오래된 물건에 깃든 시간과 추억이 만드는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알뜰하게 살되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면 더욱 좋겠다.
가격을 세심하게 비교하고 쿠폰을 쓰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그렇게 알뜰하게 장을 보고는 출구 옆에 마련된 기부 코너에 오늘 산 것 중에서 제일 좋은 것 몇 가지를 남겨 놓고 오는 사람이면 좋겠다.
우리가 사는 생태계가 이어져 있듯이 돈의 생태계도 이어져 있음을 알고 그 그물을 어그러뜨리지 않는 사람, 돌고 도는 돈의 사슬을 선하게 만드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먹고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많은 이들이 있음을 알고,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늘 겸손했으면 좋겠다. 그 많은 이들 중 일부는 아마도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에, 버는 돈으로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이 모든 바람은 내 아이가 자신이 필요한 돈을 벌어서 자기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깔린, 몹시 오만할 수 있는 바람이다. 내 아이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될지 나는 모른다. 경제 활동에 영 소질이 없을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삶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로크가 말했듯 마르크스가 말했듯 어려서부터 땀 흘려 일하고 그것에서 인간다움을 찾는 인간이 가장 먼저 되기를 바란다.
나와 남편은 둘 다 연구하고 글 쓰는 사람들이기에 앞으로도 딱히 재산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일확천금은 늘 마음속으로만 꿈꾸기에 둘 다 로또를 사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인간들이기도 하다.
많은 돈을 물려줄 순 없어도, 아이들에게 돈의 가치를 알고 단단한 경제관념을 물려주는 일은 열심히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 작가: 이진민 / 제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정치철학 박사
미국서 두 아이를 낳아 현재 독일에서 거주 중. 철학을 일상의 말랑말랑한 언어로 풀어내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 본 글은 이진민 작가님께서 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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