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초원의 집>을 정말 좋아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런저런 것들을 손수 만들어 먹던 이야기에 특히 폭 빠져들었는데, 그중에서도 버터와 치즈를 만드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크림을 절구질해서 버터를 만들고, 당근으로 색을 낸 뒤에 딸기와 잎사귀 모양의 틀로 예쁘게 찍어내던 이야기. 또 크림을 걷어낸 우유를 데워서 레닛을 담가 뒀던 물과 소금을 넣어 섞은 뒤, 통에 담아 누름돌로 눌러 둥그런 치즈를 만들어 차곡차곡 쌓아두던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절굿공이에 묻어 나온다던 버터 알갱이의 맛을 상상했고, 정말 저렇게 보름달처럼 둥근 치즈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다.
독일은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치즈 문화가 조금 약한 편에 속하지만 (옆 나라에서 다양한 치즈들을 숙성시킬 동안 이 인간들은 맥주만 줄창 숙성시켰지 싶다) 내가 사는 바바리아 지방에는 브로트 자이트(Brotzeit, 영어로 직역하면 bread time)라는 전통적 음식 문화가 있어 치즈가 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브로트 자이트는 부담 없이 즐기기 좋은 간단한 스낵형 식사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빵과 버터, 각종 치즈, 햄이며 살라미와 달걀, 빛깔이 예쁜 순무와 통째로 절인 작은 오이, 렐리쉬 같은 걸 플래터에 파이팅 넘치게 주르륵 늘어놓고 먹는 건데, 여러 종류의 치즈가 널려 있어야 하므로 아예 마트에서 다양한 치즈들이 한 팩으로 든 제품을 팔기도 한다. 유럽에 살다 보니 미국과는 치즈를 대하는 자세에서 가끔 차이가 느껴진다. 일단은 여기저기에 치즈를 아낌없이 섞어 요리 재료로 쓰는 미국에 비해 유럽에서는 치즈 그 자체를 독립된 음식으로 즐기는 경향이 더 큰 것 같다. 또 한 가지 차이는 가공 치즈류에 대한 생각. 이곳의 치즈 섹션에는 가공 치즈류의 점유율이 정말 보잘것없을 만큼 현저히 낮다. 치즈 맛 물건이 아닌 진짜 치즈들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달까.
가운데가 라클레트(사진출처: Hummingbird High), 양 옆이 캐제 슈페츨레
- 작가: 이진민 / 제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정치철학 박사
미국서 두 아이를 낳아 현재 독일에서 거주 중. 철학을 일상의 말랑말랑한 언어로 풀어내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 본 글은 이진민 작가님께서 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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