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암이다
<암은 병이 아니다> 안드레아스 모리츠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깜짝 놀란 대목을 소개해야겠다. <암은 병이 아니다>라는 책에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암’이라는 말. 그 소리에 나는, 내 영혼은 왜 그렇게 놀랐을까. 불에라도 데인 듯이.수술 전에 자주 산책했던 언덕 위의 성당 모습. 사진에서는 골목 끝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위). 언덕길을 오르면 왼쪽은 공원, 오른쪽은 성당으로 가는 길. 가운데엔 벤치(아래). 산책을 시작한 지 1주일째다. 며칠째 해가 나와서 일요일은 작정을 하고 아이를 앞세워 언덕 위 공원으로 올라갔다. 공원까지 오가는 길은 왕복 1시간. 소풍 가는 기분으로 점심에는 시금치 김밥을 만들어 먹었다. 김밥은 반드시 ‘흰쌀밥’이어야 한다는 아이와 김밥에는 ‘시금치’가 들어가야 한다는 엄마 사이에서 탄생한 시금치 김밥. 이왕이면 색깔도 곱게 당근과 계란까지 넣고 싶었지만 아침에 남편이 당근 주스 만든다고 당근을 다 갈아버려서 남은 게 없었다. 두 개 남아있던 계란도 남편이 삶아서 아이와 하나씩 먹어치웠다. 그래서 시금치만 넣은 김밥이 나왔다.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해가 먹구름에 가리고 바람도 차갑고 발도 시려서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오늘부터 아침에 요구르트와 계란을 먹지 않기로 했다. 동물성 단백질과 생선과 유제품도 당분간 섭취하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 당근과 비트를 갈아 넣은 신선한 주스와 익힌 야채를 갈아서 해독 주스를 마시기로 했다. 해독 주스 재료는 조카가 두 통이나 준비해주고 갔다. 그리고 아침에 풍욕을 시작했다. 몸의 독소를 빼고 피부 호흡을 통해 산소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부작용이 없는 착한 요법이라고 내 친구 J가 적극 추천했다. 시간도 30분으로 딱 적당해서 좋았다. J는 혈액 순환을 위해 냉온욕도 권했다. 나는 체온을 올리기 위해 족욕과 반신욕을 매일 번갈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뜨거운 욕조 물에 있다가 물 밖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냉온욕 효과가 있다고 해서 당장 시작했다. 냉온욕은 혈액 순환과 독소를 빼는데도 좋다. 안 할 이유가 없다. 물값은 좀 들겠지만. 그동안 암에 관한 책들을 읽어 보니 체내의 독소를 빼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암이란 몸속의 독소와 농도가 진해진 혈액 때문에 각 세포에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고 특히 산소 공급이 부족해서 세포의 변형이 일어난 현상이다. 국내외 여러 책에서 저산소와 저체온, 그리고 독소를 암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보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아침을 밥이나 검은 빵이나 유제품으로 먹는 대신 야채 주스와 해독 주스를 먹음으로써 몸속의 독소를 빼고, 수술로 놀란 장기들과 위와 장에 충분한 휴식을 줄 수 있다. 점심은 잡곡밥과 국과 신선한 야채 위주로 먹고, 저녁은 나물이나 익힌 야채를 주로 먹는다. 그래서인지 5킬로가 빠진 후 다시 1킬로가 빠졌다. 어디까지 빠지려는 건지. 무한대로 뺄 생각은 없는데 말이다. 드디어 콩나물을 먹었다. 조카가 온라인 한인 마트에서 주문해서 콩나물 무침과 콩나물 국을 끓여주었다. 콩나물 무침은 조카가 간 후 그 자리에서 현미밥 한 숟갈과 폭풍 흡입했고, 콩나물 국은 나중에 계란 한 개와 현미 잡곡밥을 한 숟갈 넣고 푹 끓여서 먹었다. 그토록 먹고 싶던 콩나물을 먹자 속이 개운하고 후련했다. 다음날에는 국 속의 콩나물까지 모조리 건져서 무쳐먹었다. 집에 돌아온 후로는 미역국보다 배추 된장국을 자주 끓여먹는다. 배추 한 통을 전부 넣고 푹 끓인 후 먹을 때마다 조금 덜어서 버섯을 넣어 한소끔 끓여 먹는다. 배추 버섯 된장국을 먹으면 언제나 친정 엄마가 끓여주시던 뜨거운 시래깃국 생각이 난다. 내가 하면 그 맛이 안 날 것 같아서 그냥 내 식대로 해 먹는다. 한국에 가면 언제라도 먹을 수 있는 엄마표 집밥을 생각하면 기운이 난다.
지그재그 길을 올라 언덕에 올랐을 때 우리 동네가 아래로 보인다(위) . 콩나물국과 무침. 그리고 클래식이 흐르는 빨간 라디오(아래).
가끔 컨디션이 좋을 때는 <육조단경>을 소리 내어 읽는다. 육조단경은 달마 대사를 시조로 6대에 해당하는 육조 혜능 스님이 설한 법문을 모은 경전이다. 소리 내어 노래를 부르거나 큰소리로 책을 읽는 게 폐활량을 늘이는데 좋다고 언니의 말을 듣고 옛날에 들었던 육조단경 생각이 났다. 분량이 많아서 좀처럼 손에 들기 어려웠던 경전이었다. 스승의 한글 해석을 소리 내어 읽을 때마다 금강경 한 구절에 단박에 깨쳤다는 육조 스님의 근기에 놀란다. 육조 스님은 글도 모르던 나무꾼이었다. 나무를 해서 객주에 팔고 그 돈으로 늙은 노모를 모시던 그가 어느 선비가 객주 방에서 읽던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고 항상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라는 글귀에 단박에 도를 깨쳤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는가. 가사와 발우를 전하던 의식은 육조 스님까지만 이어졌다. 매일 라디오로 클래식 음악도 듣는다. 원래 만만하게 즐겨 듣던 프로이기도하고, 믿거나 말거나 암이 클래식 음악을 싫어한다고 해서. 클래식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서 들리는 대로 듣는 편인데 두 번 정도 감동한 나머지 벌떡 일어나 라디오 쪽으로 달려가 제목을 확인한 적이 있다. 베토벤의 심포니 7번과 슈만의 첼로 콘체르트였다. 라디오 스크린에서 제목과 작곡가를 확인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놀란 대목도 소개해야겠다. <암은 병이 아니다>가 그 책이다. 저자는 독일인인 안드레아스 모리츠로 인도에서 아유르베다를 배운 후 미국으로 건너가 자연요법으로 많은 암환자를 치료했다. 그의 책 중에서 크게 충격을 받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암이다. 우리는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는 만큼, 딱 그만큼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일말의 집착이나 소유욕 없이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으려면, 자신의 모든 결점이나 실수 혹은 부족함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에게 비판적이거나 자신의 외양, 행동 혹은 감정을 싫어한다면, 우리는 닫힌 마음을 갖게 되고 스스로를 가치 없다고 느끼거나 부끄럽게 느낄 것이다. (…) 여러분 자신에게 오일 마사지를 받게 하고, 제시간에 잠자리에 들게 하고,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먹게 하고, 그리고 날마다 규칙적으로 건강을 돌보는 것은 여러분 몸의 세포들이 각자 조화롭게 기능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는, 간단하지만 매우 강력한 사랑의 메시지다.
여러분도 누구나 한 번은 경험했을 가장 중요한 실험을 해봤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혹은 달리 표현하면 ‘자신의 인생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행복을 느끼지 못하거나 인생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도 한 번은 겪어보았을 가장 심각한 형태의 정신적 스트레스다. 사실 이것은 암을 포함한 많은 질병의 위험 요인이다. (…) 아무리 상황이 나쁘게 보이더라도 여러분의 몸은 항상 여러분의 편이지 절대로 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두기 바란다. 사실 여러분의 인생에서 여러분을 해치려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고통조차도 실제로는 도움이 된다. 여러분은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로부터 배움을 얻을 수 있는데, 암도 예외는 아니다. (<암은 병이 아니다> 중에서 인용함.)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암이다. 이 말에 나는, 내 영혼은 왜 그렇게 깜짝 놀랐을까. 불에라도 데인 듯이. 많은 책에서 암이 단순히 몸 안의 산소나 체온이나 영양소 등의 결핍과 생활습관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마음의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다. 일명 스트레스. 나는 어떤 풀리지 않는 묵은 감정을 오랫동안 가슴속에 담아온 것일까. 나는 나 자신을 사랑했던 걸까.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내 인생은 행복했나. 나는 무엇을 용서하지 못했나. 암을 선고받은 후로 마음을 돌아본 적이 없다. 마음 또한 암의 원인에서 예외는 아닐 텐데. 살면서 많은 것을 털어내지 못하고 가슴속에 담았다. 쉽게 속을 보여주지 않고 살아온 결과는 아닐까. 겉으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은 모든 게 괜찮지 않았던 건 아닐까. 암을 얻고 깨닫는다. 나는 나 자신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살았다. 깨달음에 늦은 때란 없다. 몸처럼, 삶도 습관이었다.
언덕으로 오르는 지그재그 길!
- 작가: 마리 오
뮌헨에 살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북 <프롬 뮤니히><디어 뮤니히><뮌헨의 편지> 등이 있습니다. - 본 글은 마리 오 작가님께서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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