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밋빛이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해외에서 살다온 선배맘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아이가 한 달 내내 혹은 두 달 내내 울면서 학교에 갔다는 경험들이 태반이었고, 결국 한국에 돌아와야 할 상황을 생각하면 마냥 놀면서 여유롭게 보낼 수만 없다는 얘기들도 많았다. 잠깐 동안 해외살이를 경험한 아이들이 막상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적응 문제와 학업 차이 때문에 더 힘들어한다는 얘기도 들렸다. 떠나기도 전부터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문제들까지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려니, 슬그머니 걱정이 되는 건 당연지사.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친한 친구들, 익숙한 환경을 떠나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디뎌야 하는 아이의 적응 문제는 내가 생각해도 걱정이 되는 부분이었다.
친구 하나 없이 낯선 독일 땅에서 늘 ‘혼자’였던 아이는 한 달 후
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틱 증상이 지속됐다.
베를린 살이를 시작한 후,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가을학기제에 따라 8월 말 1학년 입학을 앞두고 있었던 아이는 베를린에 도착한 며칠 후부터 틱 증상이 시작됐다. 6세 무렵, 유치원에서 발표회를 준비하면서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아 한동안 틱 증상이 있었던 이후 처음이었다. 그때 한 달 이상 지속되던 틱 증상을 지켜보며 매일 눈물 나게 속상했지만, 결국엔 아이 스스로 극복해냈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처음만큼 당황스럽진 않았다. 다만, 아이를 위해 가장 좋은 일이라고 선택했던 결정이 아이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그럼에도, 변명 같지만, 아이를 믿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정착 과정이 까다로운 독일 땅에서, 나는 매일매일 공무 절차를 밟고 집을 구하고 살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고, 남편 또한 바로 시작된 업무 때문에 치열한 하루하루를 사느라 아이는 뒷전이 되기 십상이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아이는 한국에서 가져온 책 몇 권과 로봇과학 블록 조립으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며 학교에 입학하기까지 한 달 가까운 시간을 버텼다. 다행히 틱 증상이 더 심각해지지는 않았지만,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잘하고 있는 걸까.
독일에서 벌써 세 번째 학기까지 마친 아이는 그렇다고 전적으로 독일 방식으로 자라는 것도 아니다. 공립학교가 아니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나는 한국 엄마이고 한국식 교육이 필요하다고 믿는 부분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지금 우리 아이는 행복한 교육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 안에서의 ‘공부’만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경험들이 그 행복을 채워주고 있다. 한국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온전히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들 또한 겹겹이 쌓여 그 행복의 질을 높이고 있다.
나는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매일 놀라고 깨닫고 그러다가 또 시행착오를 겪고 다시 반성하기를 숱하게 반복 중이다. 지난 일 년 반은 어쩌면 나의 성장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놀라운’ 이야기는 입학식에서부터 시작된다. 입학식이, 교실이,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울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준 그곳에서부터.
작가: 어나더씽킹 in Berlin/공중파 방송작가,종합매거진 피처 에디터, 경제매거진 기자, PR에이전시 콘텐츠 디렉터, 칼럼니스트, 자유기고가, 유럽통신원 활동 중, ‘운동화에 담긴 뉴발란스 이야기’ 저자
현재 베를린에 거주. 독일의 교육 방식을 접목해 초등생 남아를 키우며 아이의 행복한 미래에 대해 고민합니다.
본 글은 어나더씽킹 in Berlin 작가님께서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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