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전 하나, 비타민 D 챙겨 먹기: 햇빛으로 충전할 수 없으니, 먹어서라도 채워야 하는 비타민 D. 먹는 즉시 몸에 쏙쏙 흡수되는 게 아니라기에 반짝하고 해가 나는 한여름이 지나면 곧바로 고용량으로 챙겨 먹기 시작했다. 임신 기간에 엽산과 철분제를 챙긴 것을 제외하고는 영양제라고는 찾아본 적도 없었는데…긴긴 겨울 동안 내 몸 안에서 빛나고 있을 작은 태양을 만들기 위해 꼬박꼬박 먹기로.
처방전 둘, 해가 나면 열일 제쳐두고 햇볕 쬐기: 낮은 짧고, 밤은 길고, 안개와 구름은 두껍고. 이런 악조건 뚫고 햇살이 잠시 얼굴을 내 비출 때가 있다. 말 그대로 버선발로 맞이해야 할 반가운 손님. 해가 나면 열일 제쳐두고 햇볕을 쬐며 광합성하기로 했다. 우리집 작은 발코니도 좋고, 몇 발자국 걸으면 닿을 수 있는 공원이면 더 좋고. 금쪽같이 귀한 햇볕을 쬐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기분이 좋아졌다. 자연산 비타민 D가 몸 속 구석구석에서 퐁퐁 솟아나고, 눅눅했던 기분도 뽀송뽀송 마르는 느낌이랄까.
처방전 셋, SNS 멀리하기: 이건 전문가의 조언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나를 관찰해 본 결과 필요하다고 생각해 취한 조치. 일상에서 얻는 소확행의 순간을 SNS에 올리다 보면 친구들의 대확행이 담긴 사진을 보게 된다. 집을 사고, 회사에서 승승장구하고, 럭셔리한 휴가를 즐기고… 남들은 대단하고 확실한 행복을 누리는데, 나만 쪼잔하고 쩨쩨한 행복 쪼가리를 겨우 쥐고 있는 것 같아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제곱, 세제곱, 아니 무한대로 증폭되는 우울함. 내 마음에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당분간 떨어져 있자, SNS.
처방전 넷, 규칙적인 일상 세우기: 무기력함을 한 번에 퇴치하기는 어려우니, 해내기 쉬운 작은 미션 여러 개를 일상 여기저기에 이정표처럼 심어두었다. 월수금 아침에는 아이들 등교시킨 후, 곧장 집으로 오지 않고 공원 세 바퀴 걷고 들어오기. 꽃 ‘화‘자를 쓰는 화요일은 마트나 시내 꽃집에 들러 예쁜 꽃을 사 오는 날. 목요일 오전에는 아너트 할머니 댁에 가서 독일어 회화 연습을 하고… 작은 이정표를 쫓아 걸으며 우울의 숲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었다.
처방전 다섯, 다정한 이들과의 맛있는 수다: 라면으로 위장을 가득 채우거나, 배가 고픈지도 모른 채 쫄쫄 굶거나 했던 불규칙한 식사패턴. 질 좋은 연료가 떨어졌으니 몸과 마음이 처지는 건 당연한 일.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밖으로 나가 제대로 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남편 하고는 연구소 구내식당에서 독일식 메뉴를 먹었고, ‘지요밍‘ 언니네 집에서는 식탁 가득 차려준 한식 밥상을 싹싹 비웠다. ‘이네‘랑은 빵 학교라고 불리는 동네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와 속이 두툼한 샌드위치를 먹었고. 다정한 이들과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먹는 맛있는 음식은 좋은 연료가 되어 굳어있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줬다. 추운 겨울, 그 온기로 일주일 정도씩은 버틸 수 있었다.
처방전대로 한다고 갑자기 겨울이 행복의 시간으로 탈바꿈한 것 아니었다. 원망스럽게도 독일의 겨울은 여전히 지독하게 우울하고, 징그럽게 음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의 시간이 겨울로 기울 때면 다섯 가지 셀프 처방을 되뇌며 다짐한다. 비타민 D 잘 챙겨 먹고, 햇빛 많이 보고, SNS는 적당히 멀리하고,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다정한 사람들과 맛있는 것 먹으면서 잘 버텨보자고. 우울하고 무기력한 날도 있겠지만, 내 작은 노력이 모이면 그럭저럭 괜찮은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주문을 건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보면 봄은 반드시 오니까.- 작가: 오롱
<동독에서 일주일을> 공동저자. 한국에 나고 자람. 스위스, 미국, 독일을 거쳐 이제 막 영국에 정착. 언어, 문화, 정체성이 뒤섞인 콩가루 집안을 지키는 씩씩한 엄마.
- 본 글은 오롱 작가님께서 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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