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십 년간 키운 배짱이 있어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겠지 하는 담대한 마음이었지만, 독일의 새 집으로 향하는 도로 위를 달릴수록 어이쿠 이거 만만치 않겠구나 싶었다.
이유는 하나, 당최 표지판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도시 이름들이 발음하기도 어려운 데다 어찌나 긴지, 표지판을 뚫고 밖으로 나올 기세였다.
가뜩이나 길눈이 어두워 학교 캠퍼스에서도 자주 길을 잃는 바람에 후배들이 구조대를 파견하곤 했던 나다. 그래도 그땐 표지판이라도 금방 금방 읽었다. 미국에서도 표지판을 보면 일단 발음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선 표지판 읽으려고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할 판이었다.
아. 내가 이 곳에서 운전이나 제대로 하고 다닐 수 있으려나. 불안이 꼼지락꼼지락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그렇게 아이의 조그만 손을 잡고 헐레벌떡 뛰어가면서 내 머릿속은 시끄러웠다.
아이 한글 수업이 아니라 중요한 인터뷰 같은 거였으면 큰일 날 뻔했구나. 아니 그 방송이 위급한 대피상황을 안내하는 것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과연 방송을 듣고 내 아이를 적절히 보호하며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을까. 그 날 나는 약간 서늘해진 마음으로, 그간 느슨하게만 가졌던 독일어의 필요성을 단단히 가슴에 새겼다. 작은 불편이 커다란 위험으로 바뀌는 것은 찰나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공통 목표는 독일어가 되었다.
엄마도 아빠도 아이들도,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에게 가르쳐주며 조금씩 독일어를 늘려가고 있다.
다시 마음먹고 도전하기 시작한 독일어.
하지만 이십 대에 일본어나 스페인어를 마주하던 때와는 또 다르다.
불혹이 넘어 새 언어를 마스터하려니,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마음에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 나이에 관사 변형의 이치가 안 깨달아져 마음이 찰랑거리고 있다.
언어를 배울 때는 ‘장례희망’은 대통령이며 ‘곱셈추위’가 싫은 아이들처럼 내 말이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구 조잘거려야 하는 법인데, 약간 완벽주의가 있는 나는 틀릴 것 같은 문장을 입 밖으로 내려면 당최 입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꾸역꾸역 해나가고 있다.
우선은 기초를 잡기 위해 학원을 다녔다. 아이들 때문에 평일 코스를 듣기 어려워 주말에 인텐시브 코스를 들었다. 열 시간씩 넘게 자리에 앉아 있느라 가뜩이나 납작한 내 엉덩이는 더욱 평면에 가까워졌다.
얼추 혼자 해나갈 수준이 된 이후로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하루에 한 장씩 동화책 읽기, 독일어 팟캐스트 듣기, 아이들과 어린이용 그림 사전 보면서 단어 공부하기, 일상의 반경에 들어오는 독일 사람들과 짧게라도 대화하기, 아이들과 함께 동네 도서관에서 어린이용 DVD 빌려 보기.
첫째, 나는 독일어를 배우면서 그간은 내가 전혀 닿을 수 없었던 삶과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다녔던 학원에는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거기엔 늘 동그란 모자를 눌러 쓰고 있던 누르한이 있었다.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폭탄이 터지는 밤길을 밤새 걸어 도망치면서 하룻밤만에 사랑하는 어머니와 남동생을 잃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목이 다 맵도록 눈물을 펑펑 쏟았다. 시리아에 살 때 누르한은 학교 교감이었고 남편 오마르는 시장이었다. 슬슬 은퇴를 앞둔 나이에 고향을 떠난 그들은 새로운 곳에서 낯선 독일어를 익히느라 애를 먹었고, 공부를 굉장히 잘했다는 누르한의 막내아들은 독일어를 하지 못했기에 대학을 갈 아이들이 진학하는 김나지움에 가지 못했다. 결국 가장 성적이 낮은 아이들이 가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며 눈시울이 붉어진 누르한 앞에서, 나는 한창 민감할 나이의 아이가 겪고 있을 좌절감이 어떻게 그 아이를 할퀴고 있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곳에는 또 한창 싱그러울 나이에 늘 피곤에 절어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했던 알렉산드리아가 있었다. 알고 보니 세상 물정 모르는 외국인이라고 부당하게 과도한 노동을 강요받았던 것이라, 우리는 함께 걱정하고 안쓰러워했다. 나는 제대로 말하지도 못하는 독일어로 더듬더듬 분노했고, 옆에서 유창하게 분노하는 선생님과 함께 그녀를 도울 방법을 궁리하기도 했다. 내가 독일에서 난생처음 접한 신묘한 드링크인 슈페치(Spezi, 콜라와 오렌지 소다를 반반 섞은 음료)를 좋아해서 늘 수업시간에 두 병씩 마시곤 했던, 반에서 가장 어렸던 자비드는 겨우 열여덟 살이었다. 수업 중에 어머니가 학교로 달려와 지금 당장 도망치라고 했고, 그렇게 도망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독일까지 오는데 몇 달이 걸렸다고 했다.
성별뿐 아니라 독특한 단어들이나 문장에 느슨하게 스며있는 문화 역시 독일 사회를 맛보는 애피타이저이자 한국 사회를 질겅질겅 되씹어 보는 껌 같은 것이었다. 나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과 역으로 일맥상통하는 Schadenfreude(남의 불행에서 기쁨을 느끼는 심리)라는 단어를 보면서 양국 간의 이 국경을 넘나드는 솔직함에 웃지 않을 수 없었고, 아름다운 독일어 단어로 꼽히지만 번역하는 것이 꽤 어렵다는 Habseligkeiten(개인이 물질적으로 가진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까지를 모두 의미하는 단어로서의 ‘소유’), Geborgenheit (든든함, 아늑함, 사랑, 친밀감, 열린 마음 같은 것들을 모두 포함하는 단어) 같은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애쓰면서 이런 단어를 만들어낸 사회와 그 안에 든 마음을 생각했다. 반대로 정(情)이나 한(恨), 효(孝) 같은, 번역하려면 꽤나 어려울 우리 단어들과 그 정서를 구비구비 담았을 무수한 삶들도 떠올려 보았다.
언어에는 한 사회가 오랜 시간을 두고 겹겹이 녹아있다. 내가 독일어를 새로 시작하지 않았다면 나는 언어에 켜켜이 쌓인 다양한 생각거리를 꺼내 곱씹어보거나, 오랜 시간 언어에 방울방울 스민 다양한 인간의 감정들을 헤아려보는 일에 게을렀을 것 같다.
셋째, 나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언어의 힘을 새롭게 깨닫는다.
말이 가진 힘, 그리고 말이 주는 힘. 두 힘은 제법 다르지만 한 인간 안에서는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말에는 말 자체가 가진 힘이 있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도 힘을 준다. 예를 들어 당당함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당당하다. 그리고 “저는 당당하게 살고 싶어요”라고 입 밖으로 내뱉는 사람에게 실제로 당당함의 수치를 높여주기도 한다.
굳이 하이데거나 비트겐슈타인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느낀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고 사유의 수단이라는 것을. 빈약한 언어로는 가난한 집을 지어 영혼이 곤궁한 살림을 살게 된다. 내 안에 아무리 부푼 구름처럼 오색찬란한 사랑이 빛나고 있어도, 표현할 어휘가 빈곤하면 내뱉는 것은 그저 흙빛의 작은 모래알일 수 있다. 그간 나는 아직 독어가 짧아 아이의 반 친구들에게 너희가 얼마나 기특하고 사랑스러운지 제대로 전해줄 수 없었고, 황당한 일을 겪어도 부당함을 조목조목 설명할 수가 없었다. 독일어로 만든 내 존재의 집이 마치 첫째 아기돼지의 지푸라기 집처럼 부실해서, 바람만 불면 밑천을 드러내며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었다. 발레리가 언어를 아름다운 사슬이라고 한 까닭은, 언어는 우리에게 많은 구속으로 작용하고 습득에도 힘이 들지만 이 사슬에 제대로 매여야만 우리가 퍼덕거리며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힘. 그 중에서 가장 고마운 것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늘어나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는 점이다. 언어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에피소드들이 풀리는 경험이 늘어났다. 무뚝뚝해서 조금 무섭기도 했던 유치원 원장님이 실은 얼마나 장난을 잘 치는 분인지, 매주 화요일에 우리 건물에 청소하러 오시는 거트 아주머니가 얼마나 다정한 분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이 곳에서 뭔가 작게라도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하고 있다. 시작과 도전이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은 이렇게 또 다른 시작과 도전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한 세계를 열 수 있는 열쇠를 갖는 것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위로는 같은 민족에게 막혀있는 우리지만, 새로운 언어를 통해 우리는 집 안에서 다른 세계로 통하는 길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언어를 배우다 보면 실제로 그 언어를 통해 다른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 경우가 분명히 생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언어에 흥미를 느끼고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가족이 함께 배우면 더 좋은 것 같다. 부부간에는 서로에 대한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이 생기면서 동지애가 생겨나고, 서로 자극이 되어 분발하게 된다. 세상에 엄마 아빠도 모르는 것이 있고, 함께 찾아가면서 배우는 게 재밌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경험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한 번은 큰아이가 그랬다.
“한국말은 쉽고 영어는 재미있는데 독일어는 어려워.”
어떤 말을 좀 할라치면 애를 데려다 딴 세상에 갖다 놓은 엄마로서는 그 말이 짠했다.
네가 한국에 있었으면 아마 말의 샘이 더 깊고 넓었을 텐데. 너는 그 안에서 신나게 헤엄치며 더 편안하게 많은 걸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엄마도 쩔쩔매지 않고, 네 샘이 더 깊고 넓어지도록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여러 샘에서 헤엄치다 보면 넓은 바다에서 자유로워지는 날도 있을 거야.
“엄마도 그래. 독일어 진짜 너무 어려워. 우리 같이 공부하자.”
자기를 이끌어주는 엄마보다 자기와 함께 고군분투하는 엄마를 더 편안해 하기를, 커다랗기만한 아빠에게 자기도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아이가 뿌듯해하기를 바랄 뿐이다.
나와 우리 가족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한, 이 도전은 계속되어야 한다.
논어로 시작했으니 논어를 다시 소환해 볼까. 논어를 펴면 맨 첫머리에 이런 말이 나온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나는 지금 배우고 때때로 익히고 있으며, 그것은 분명히 즐겁다.
나는 이 언어로 내 아이들과 다양한 감정을 나누고 화해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이 언어로 이웃들을 좀 더 알게 되고 더 많이 웃게 되기를, 새로운 꿈을 꾸기를, 그리하여 더 반짝이며 살 수 있기를 바란다.
- 작가: 이진민 / 제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
미국서 두 아이를 낳아 현재 독일에서 거주 중. 철학을 일상의 말랑말랑한 언어로 풀어내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 본 글은 이진민 작가님께서 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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