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왔으면 온천은 가봐야지
독일의 혼욕문화 이야기
독일 온천은 일단 시설이 너무 좋다. 역시 온천으로 유명한 일본이 소박하고 프라이빗한 목욕 중심의 온천이라면 독일식 온천은 규모 자체가 크다. 수영장 같은 넓은 바데풀이 있고, 유수풀이나 안마풀 같은 서브 풀과 사우나도 온도별로 여러 개가 있다. 식당이나 바는 당연, 규모가 큰 온천은 부대시설도 다양하게 갖추고 있고, 메인풀 한쪽에서는 아쿠아로빅 같은 스포츠 프로그램을 시간마다 운영하기도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천탕이 있다. 그냥 노천탕이 아니라 좋은 경치와 함께 하는 노천당인데 도시 외곽 지역에 있는 온천은 보통 숲에 둘러 쌓여 있어서 산림욕을 하는 것처럼 숲냄새가 짙게 난다. 도심에도 온천이 여러 개 있는데 들어가보진 못했지만 홍보용 사진 상으로는 규모가 작아도 노천탕을 꼭 갖추고 있고,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놨다. 제일 좋았던 온천은 베를린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온천탕들이 소금 비율에 따라 나뉘어져 있다. 몸이 둥둥 뜰 정도로 소금 함유량이 높은 탕에서는 상처가 따끔거릴 정도인데, 믿거나 말거나 그 온천에 다녀온 이후로 내 좁쌀 여드름이 싹 사라졌다. 이 온천의 매력은 한 겨울의 노천탕에 있다. 실내 메인풀에서부터 이어진 통로를 따라 노천탕으로 나가면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눈이 쌓인 나무들과 청명한 밤하늘이 펼쳐진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끈한 물에 몸을 뉘이고 나무 냄새를 맡으며 밤하늘의 별을 보니 천국 같았다. 독일에 와서 오빠네 식구들이랑 온천을 갈 때에는 항상 ‘수영복을 입는 날’에 갔다. 독일 온천은 모두 나체여야만 하는 날도 있고, 수영복을 입어도 되는 날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갔던 그 날은 수영복을 입어도 되고, 안 입어도 되는 날이었다보다. 사람들의 반은 수영복을 입었고, 반은 수영복을 입지 않았다. 이미 다른 온천에서 여러번 나체의 독일인을 경험 했었지만 그 날은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자연주의 독일인들을 보며 문화적으로 압도 당했었다. 표를 끊고 탈의실에 들어서면 바로 여러 개의 칸막이가 있는데 칸막이 안에서 옷을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 들어온 칸막이의 반대쪽 문을 열면 락커룸이 나온다. 락커룸도 공용 공간이라 수건으로 몸을 가리지 않은 사람들이 이리 저리 휙휙 지나갔다. ‘내가 비록 수영복을 입었지만 이런 나체 문화에 놀라지 않아’라는 마음가짐으로 내 락커에 옷을 넣고 있었는데 옆 락커를 쓰시는 할아버지가 내 근처에서 수건으로 열심히 몸을 닦으셨다. ‘아이쿠’ 소리가 나올 뻔 했지만 자연스럽게 샤워실로 이동했다. 샤워는 남녀 따로 한다. 남녀용 분리된 화장실 옆으로 샤워장이 각각 있는데 돌아다니다보면 굳이 샤워장을 뭐하러 분리했나 싶다. 샤워를 끝내고 온천장에 입장하면 다시 공용공간. 지상낙원처럼 넓~은 바데풀과 가짜 야자수들 조금 그리고 나체의 독일인들이 펼쳐진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목욕탕 문화를 경험하면 같은 성별인데도 수건 한 장 걸치지 않고 락커룸을 활보해서 충격적이라는데 그들의 마음이 조금 이해 갈 것 같았다. 걸어다니면서 마주치는 것보다는 풀에 들어가있는게 마음의 안정을 찾기에 좋다. 온천에 동양인이 적은 편이라 나 또한 사람들이 자주 쳐다보는 대상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풀에 들어가 얼굴만 쏙 내밀고 주위를 둘러본다. 커플도 많이 보이고, 가족들끼리도 많이 온다. 아빠, 엄마, 아들도 함께 오고, 남녀친구들끼리도 함께 온천을 즐긴다. 그곳에서 나는 독일어학원 선생님을 봤는데 선생님은 아내분과 아내분 친구와 같이 오신 것 같았다. ‘나라면~?’ 내 주변 사람들과 온천에 오는 아이디어를 떠올리자면 절로 고개가 가로 저어졌다. 앞으로도 계속 못 할 것 같다. 아무리봐도 이 혼욕문화가 신기한데, 너무 신기해하면 촌스러우니까 문화적 포용성이 높은 세계시민으로서 이런 다른 문화도 자연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스스로 되뇌였다. 마지막으로 독일 온천의 하이라이트는 사우나다. 풀에서 수영복을 입을 수 있는 날에도 사우나에서는 모두 벗어야 한다. 본인이 땀을 흘릴 자리에 깔아야 하는 용도로 수건 한 장만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데 사우나에서만큼은 어느 온천이나 예외 없이 수영복을 입지 않는다. 땀을 흘린 수영복을 그대로 입고 돌아다니면 박테리아가 생긴다?라는 위생 상의 문제가 있다고 한다. 사우나 시작시간을 계속 체크하던 오빠가 수건을 들고는 사우나를 하러 간다고 했다. ‘우와’의 표정으로 바라보는 내게 독일에서 오래 산 사람으로서 한마디 한다. “얘네들한테는 그냥 자연스러운거야. 바디 이즈 네이쳐!”
독일의 나체 문화는 몸이 가장 자유로운 상태로 활동하면서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인격체를 만드는 것 그리고 성에 대한 자연스럽고 건전한 접근을 추구한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도, 독일에도 나체로 수영하고, 스포츠를 즐기거나, 휴가를 즐기는 장소들이 많다. ‘몸은 그저 자연이다’라는 사고방식도 한 몫 하지만 여름 빼고 항상 칙칙한 독일의 일조량과 관련이 있기도 할 것 같다. 해만 떴다 하면 공원에도 웃옷을 벗고 놀이를 즐기는 독일인은 당연하고, 심지어 베를린 중심지에 있는 티어가르텐 공원에서 나체로 썬탠을 하는 커플을 봤다. 또, 유럽여행 할 때 해변이 아닌데도 셔츠를 벗고 자전거를 타거나 돌아다니면 독일인인 경우가 많다. 서독지역에서 유년기를 보낸 남자친구에게 독일인의 나체문화에 대해 물었더니 ‘정확히는 동독에서 시작된 문화’라고 정정해줬다. 동독의 사회주의 정권이 기존의 권위와 차별을 철폐한다는 이유로 일부러 나체문화를 장려했는데 동독에서 유독 활발했고, 서독에서도 한 때 유행했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동서독 통일 이후 다른 문화가 유입되고 남들을 의식하는 정서가 생겨나면서 요새 세대들은 알몸으로 돌아다니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온천에서 나체였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많고, 현대 아이들에게 나체주의는 예전만큼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다. 나체 문화는 동독의 문화라고 말하는 남자친구도 예전에는 사우나를 즐겼는데 어느날 사우나에서 학교 제자를 만나 조금 어색하게 인사했던 이후로 가지 않는다고 한다.독일의 나체주의 문화(FKK)는 “우리 몸에 자유를 달라”는 문화이자 사조로
“옷을 입지 않는 자연 상태의 자유로운 몸 문화”를 뜻한다.
<위키피디아 발췌>
얼마 전 베를린에 놀러온 한국인 인스타그램 친구가 독일 사우나를 경험한 후기를 올렸는데 처음엔 어색했지 금방 적응했다는 글을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독일에 온지 2년이 되어가는데 사우나는 아직도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문화의 문제인지 자신감의 문제인지 내 마인드의 문제인지 셋 다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 작가: 클레어/ 에세이스트
잘 다니던 마케팅 회사를 그만두고 독일에 와서 사부작사부작 기획하고 글을 씁니다. 취미는 슈퍼마켓 신상구경, 특기는 생동감 있는 리액션 입니다. - 본 글은 클레어 작가님께서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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