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이 뭐길래
샴페인 터트리는 그날을 위하여
절대 양육 기간을 지나 도서관에서 강의를 했다. 매주 필독서가 주어지는 독서와 상담을 접목한 수업이다. 어린 자녀를 동반하도록 했다. 아이를 대신 맡아줄 손이 없으면 떼어 놓고 두 시간 강의를 듣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9개월 된 딸을 데리고 수업에 참여한 83년생 젊은 엄마가 있었다. 어린아이는 칭얼대면 졸리거나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를 갈아주면 된다. 그녀는 딸이 배가 고플 땐 젖을 물려 재우고, 기저귀가 젖으면 한 귀퉁이에서 갈았다. 청강생이 모두 엄마니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아이 데리고 수업 들을 생각은 꿈도 못 꾸었다며 대단하다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육체적 노동에 시달린다. 매주 책을 읽는 과제가 주어지는 수업에 딸까지 데리고 참여한 엄마의 열정이 크게 느껴졌다. 어린 딸도 아주 훌륭한 청강생이다. 피아노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음악치료를 공부한 야무진 그녀는 수업을 몇 주 들었을 즈음,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시간을 내야 하는 제안받은 일 때문에 고민이라며 털어놓았다. 절대 양육 기간을 지나면서 여러 차례 유혹이 온다. 돌 만 돼도 많이 큰 것 같고 두 돌이 되면 자아를 찾아 떠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나도 아이가 두 돌을 지날 때 집을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을 잠재우느라 애 먹었다. 아직은 아이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자아를 찾아 떠나고 싶은’욕망’ 사이에서 괴로웠다. 24개월 즈음 또 그런 유혹으로 갈등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고 미리 말했는데 정말 딱 그 시기에 다시 연락이 왔다. 상충하는 목표 사이의 갈등은 필연이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서 육아 외에 무엇이라도 하게 해준다면 영혼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라면 과장일까. 아직은 엄마가 절실히 필요한 자녀를 맡기고 ‘일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가 ‘죽느냐 사느냐?’만큼 절박한 고민이되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엄마만큼 자녀를 잘 돌볼 사람이 없는 것처럼 그 고민 또한 누가 대신해줄 수 없다. 다만 ‘엄마와 보내는 3년의 중요성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려주었다. 부모의 보살핌이 생명과도 같은 시기가 있다. 어릴수록 혹은 엄마를 점점 인식하게 되면서 오로지 주 양육자에게만 죽어라 매달리고 엄마가 없으면 죽을 것처럼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트리는 때 말이다. 남편에게 아이를 잠깐 맡기고 일을 보더라도 한두 시간 안에 후다닥 보고 돌아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어찌나 불안한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안절부절못했다. 그만큼 절대 양육 기간 아이에겐 엄마가 우주이고 전부라는 것을 절대적인 의존성을 보면 피하기 어렵다.
총 12주 수업 중 첫 4주간은 애착의 중요성과 엄마가 된 자신은 어떤 양육을 경험했는지 원 가족 관계를 돌아보도록 수업을 진행했다. 젊은 엄마가 고민을 털어놓을 즈음 필독서는 마침 <엄마 냄새>였다. 이 책엔 이런 말도 나온다. “하루 3시간은 아이를 온전하게 자라도록 하는 매직타임이며, 3년은 엄마 냄새와 온도를 제공해야 하는 최소한의 역치-최소 자극의 크기-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3년 동안 제대로 투자했다면 4, 5년 투자한 것과 아주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3년을 제대로 채우지 못했을 때는 하늘과 땅 차이로 결과가 달라진다” 그녀는 수업에서 지금이 딸에게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고 미련 없이 일을 포기했다며 고마워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고 중요한 일인지 자신이 그동안 너무 오만했구나. 아이에게 미안하지 않게 지금 최선을 다하겠노라”는고백은 오히려 감동이었다. 수업을 듣고 절대 양육 기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그만큼 불안감이 덜해지고 3년은 꼭 아이 곁에 있겠다는 그녀 눈빛이 촉촉하다. 결국, 인생 고비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자신에게 달렸다. 하지만 엄마가 절대 양육 기간에 아이 돌보기는 선택이 아니다. 전적으로 아이를 도맡아 키우는 엄마가 일하는 엄마보다 불안감이 더 크다고 어디선가 읽었다. 엄마의 부재로 자란 내가 그 공백기를 채우기 위해 힘겨운 시간을 보냈기에 기필코 내 손으로 키우겠노라 했던 나도 불안감에 흔들리곤 했으니까. 아이에게 3년이라는 시간을 준다고 해서 인생의 퇴보나 정체는 결코 아닐진대 그 터널을 지나면서 나만 혼자 다른 행성에 떨어진 것처럼 소외된 느낌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애착 형성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도 잘 알지만 내 안의 또 다른 욕망을 인정하고 잠시 유보시키기는 일이 그 시기에 가장 힘겨운 정신적 어려움이다.
엄마만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아무런 두려움 없이 놀이에 빠져드는 아이를 보라. 내 곁에서 아이가 느끼는 정서적 안정감은 상상 이상이다. 엄마를 절실히 원하는 눈빛만 봐도 안다. 꽃봉오리가 때가 되면 저절로 꽃망울을 터트리듯이 아이도 사랑과 관심을 충분히 받으면 세상을 탐색하는 일이 두렵지 않게 된다. 그때를 인내하며 지켜주는 것이 바로 내가 할 일이다. 엄마가 안전한 베이스캠프가 되어주면 일정 시기가 지나 불안해하지 않고 관심을 외부로 돌릴 에너지를 갖게 될 테니까. 엄마라는 우주를 건강하게 경험하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누구보다 외부 탐색을 잘 하는 아이로 자란다. 밝고 행복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만큼 사랑을 의심하거나 결핍을 채우는데 에너지 쏟을 일이 없다. 멋지게 손 흔들며 유치원 버스를 타는 아이로 인해 서운해질지도. 그 날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 3년 세월을 아이에게 준다. 애착의 목적은 건강한 분리라는 말이 현실이 되는 날, 샴페인을 터트리기 위해.
- 작가: 김유진 / 에세이스트, <엄마라서 참 다행이야>저자
한국에선 가족치료 공부 후 부모 교육을 했으며 현재 마더코칭연구소를 운영하며 2016년 여름부터 독일에 삽니다. - 본 글은 김유진 작가님께서 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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