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 조류 독감 바이러스는 에이즈를 초월하여 전 지구를 감염시키는 끔찍한 재앙이 될지도(p152)” 모르겠다고 제인 구달은 2005년에 그녀의 책 <희망의 밥상>에서 경고했다. 2020년 코로나 사태는 인간에게 닥친 재앙이지 않은가. 코로나가 조류에서 발생한 건 아니지만 야생동물에서 기인한 면은 비슷하다. 15년 전에 이미 지구를 위협할 거라고 예언한 부분은 충격적이다.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자업자득이 아닐까. 바이러스가 인간을 위협하는 시대가 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라 여겼는데 나만 몰랐다.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는 길을 모색하며 동물과 자연의 소중함을 일찍부터 인식한 사람은 인간이 동물에게 가하는 폭력으로 인해 언젠가는 고스란히 되돌려 받으리라는 걸 예측했다.
어릴 적 시골에서 키우던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첫 만남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두 손안에 거뜬히 들어오던 따뜻하고 물컹한 작은 생명체가 어미가 없어서인지 쉼 없이 떨고 있는 모습에 내가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1, 2학년 무렵인데 내가 지켜줘야겠다고 마음먹었음에도 그 생명체의 애정은 각별하게 날 위로했다. 개뿐 아니라 천진난만한 눈망울을 껌뻑이며 되새김질하며 침 흘리던 소. 낮에 논두렁으로 끌고 가서 풀을 뜯겨야 됐던 염소까지,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던 시골 할머니 댁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중 가장 가깝게 교감했던 동물은 당연히 멍멍이. 메리라는 그 흔한 이름도 내가 지었다. 맹목적으로 주인을 따르고 좋아해 준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마지막의 메리는 목덜미를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 컸을 때니 몇 년은 동고동락한 거다. 그러고 보니 독일 오기 전 5년간 살던 동네의 주말농장 주인집이 키우던 백구와 비슷하다. 나의 메리는 토종 진돗개는 아니지만 영리했다.
그랬던 메리를 며칠 째 잃어버렸다. 며칠 만에 돌아온 메리는 다리를 쩔뚝거렸다. 그 당시 산에 덫이 많았었는데 추측해보면 덫에 걸렸다가 사투 끝에 다리를 심하게 다쳐서 집으로 돌아온 거다. 상봉만으로도 기뻤지만 어떻게 치료를 해야 될지 몰라서 전전긍긍했다. 당연히 치료는 못했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처량하게 앓던 개가 다시 없어졌다. 메리가 사라진 날 갑자기 마당의 큰 솥에서 뭔가를 오랫동안 끊였다. 어른들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아이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의 심정은 참담하다. 이후 그 어떤 개에게도 정을 주지 않는 걸로 상처는 묻혔다.
독일에 처음 왔을 때 큰 아이반 친구가 한국에서 온 아이에게 제일 먼저 물었던 건 한국사람은 개고기를 먹는다면서? 였다. 모든 사람이 먹진 않지만 먹는 사람도 있으니 아이는 우린 먹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어쩐지 좀 창피했다고 했다. 아들은 그 친구에게 넌 베이컨 안 먹니? 물었더니 자기 집에서 같이 살을 비비며 가족같이 사는 사랑스러운 개와 돼지가 어떻게 같을 수가 있냐며 한참을 토론한 일화가 있다. 하긴 중국인이 박쥐까지 먹는다는 것에 기함하며 혐오하는 반응과 비슷한 선상일까. 메리 사건 이후에도 개고기만 먹지 않았을 뿐이지 오랫동안 소와 돼지 그리고 닭과 오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다. 2020년 마흔 중반이 되어서야 내가 그토록 애정 했던 메리가 솥 안에서 푹푹 삶아진 것과 삼겹살, 닭갈비, 훈제 오리도 모두(애정 했느냐 불특정 다수인가) 동물이다.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나도 참 아둔하다.
책 표지에서 보이는 사진처럼 그녀가 서술한 문장도 담백하다. 기름기 하나 없이 채식주의자가 쓴 글 같이. 너무나 담담하게 상품 진열대에 붉은빛을 띠며 싱싱한 상태로 진열되기까지 동물이 겪는 고초를 알려준다. 잔인한 상황을 차분하게 말하니 오히려 그 무게감은 묵직하게 와 닿는다. 소 돼지 그리고 닭을 빨리 키워서 팔아 최대한의 이윤을 내려면 성장 촉진제와 질병에 취약한 공장식 사육장에선 항생제 투여는 필수다. 인간의 식탁에 저렴한 가격으로 오르기 위해 풀 한 번 밟지 못하고 갇혀 지낼 뿐 아니라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항생제와 성장 촉진제를 투여받는다. 도축될 때는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잔인하게 끝까지 목숨을 부지시킨다. 자신과 같은 종을 사료로 먹은 돼지가 식탁에 오르는 건 충격이다.
육식을 멀리하기 위해서는 공장형 가축식으로 길러내고 잔인하게 도살하는 방법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대량 생산되는 우유도 젖소가 새끼를 낳자마자 억지로 떼어놓고 필요한 젖만 억지로 짜낸다.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약을 투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바다에서 나는 생선과 새우는 그나마 공장식 사육보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양식장에서 키우는 새우는 약을 많이 쳐야 하고 오염 물질이 바다를 오염시키고 그건 다시 내게 영향을 끼친다. 먹을거리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지의 여부를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제철 상관없이 겨울에도 수박이나 딸기를 원하면 언제든지 싱싱한 과일을 사는 편리한 세상에 산다고 그저 신기하다 여겼다. 유기농 인증 제품을 소비하는 일은 결국 농약을 쓰지 않고 자연친화적으로 농가를 유지하는 농부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고 제철이 아닌 과일을 사는 것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멀리서부터 배달되는 연료 낭비와 포장제 쓰레기 배출로 지구 오염에 공조하는 일이다.
한국에서 한살림을 주로 이용한 이유는 먹거리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우리 농가에서 제철에 생산된 식재료를 먹는 게 농가를 살리고 소비자인 나도 건강한 식재료를 먹는 시스템이라 직감했다. 특히나 내 아이에게 먹일 재료라 생각하면 그리 절로 되었다. 주말농장에서 10평 남짓 땅을 분양해서 매년 감자와 토마토 상추 고추를 심고 직접 기른 채소와 과일의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아는 맛이다. 그렇게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워서 살살 녹는 상추뿐 아니라 햇볕을 실컷 받아 자연스럽게 충분하게 익은 토마토의 싱싱하고 달콤함은 내 입이 자동으로 기억한다. 침팬지가 유기농 바나나는 껍질채 먹고 농약 친 바나나는 기막히게 껍질을 까먹는 것처럼.
제인 구달은 귀한 자원인 물 자원의 위험도 동시에 알린다. 독일은 전기세와 물세 음식물 쓰레기 비용 그중 쓰고 버리는 물(하수도, 오수처리) 비용과 전기세가 특히 비싸다. 4인 가구 기준에 따라 매월 일정 금액을 내고 연말에 정산하는 시스템이라 정확히 셈하진 못했지만(매년 우린 돌려받는다. 그만큼 절약한다는 얘기) 알아서 아끼게 하는 시스템은 좋다. 전구는 LED로 전부 바꾸고 4시 30분에 해지는 겨울엔 초 사용도 일상화다. 이사 온 집엔 욕조가 있지만 반신욕은 꿈도 못 꾼다. 물 받아하는 목욕이 얼마나 사치인지 독일에 살면서 알게 됐다. 물줄기를 약하게 하는 샤워 헤드로 교체했다. 꽐꽐 나오는 물을 줄이기 위해. 물이 석유보다 더 귀한 자원이라는 걸 인식하면 이런 작은 실천이 결코 물세 하나 아끼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귀한 자원의 비용은 알아서 절약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높인 건(그동안 너무 궁상스러운 건 아닌가 투덜거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잘한 일이다.
몸살 앓고 있는 지구를 회복시키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몰랐던 일을 인식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시작은 “우리의 식습관“을 돌아보는 것이라는 말은 희망적이다. 내가 오늘 선택하는 식재료의 원산지를 궁금해하고 건강한 소비를 추구하는 작은 실천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윤리적이고 의식 있는 식생활을 실천하고 싶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일주일에 두 번 나는 계란을 사고 식재료의 원산지를 꼼꼼하게 살핀다. 육식은 당연히 멀리하고. 제인 구달은 한 사람이 고기를 끊고 유기농을 먹는 일이 무슨 힘이 있겠냐며 주저앉지 말라고 독려한다. 나 하나쯤이야, 까탈스럽지 않고 지구 환경은 무슨! 가족들의 눈총을 받으면서까지 힘들게 왜 그러나 싶을 때도 많다. 그냥 대충 먹고살까, 싶을 때 위로가 되는 문장이다. 큰 변화의 물결은 작은 불씨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지금 현재 전 지구적으로 생명에 가해지는 폭력을 최대한 상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줄 뿐 아니라 내가 지금 사는 곳에서 소비자로서 실천할 수 있는 소박한 것부터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이 책이 고맙다. 의식 있는 밥상만이 지구를 살리는 희망의 시작이라고 말해주어 더더욱.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구를 파괴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일단 그 사실을 깨닫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면 이제는 뭔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p9)
희망의 밥상과 같이 읽으면 좋을 책 추천
<아무튼 비건>
<기적의 밥상>
탈육식과 도살장을 연결한 홍은전의 칼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작가: 김유진 / 에세이스트, <엄마라서 참 다행이야>저자
한국에선 가족치료 공부 후 부모 교육을 했으며 현재 마더코칭연구소를 운영하며 2016년 여름부터 독일에 삽니다.
본 글은 김유진 작가님께서 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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