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부터 7월, 늦으면 8월까지 독일 곳곳에서 무지개 깃발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무지개 깃발과 퍼레이드의 정체는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입니다. 레즈비언과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및 퀴어 등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주최하는 행사로 성소수자의 인권을 높이고, 차별에 대항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행사와 독일의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요?
1989년 덴마크에선 동성 커플을 위한 파트너십 등록을 최초로 공식화했습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독일에서는 레즈비언과 게이에게 결혼을 허용하라는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정부와 반대하는 시민과 싸워온 이들 커뮤니티는 2001년 승리를 거뒀습니다. 기민당과 자민당의 반대에도 과반수 찬성을 얻으며, 시민 파트너십 법(Lebenspartnerschaftsgesetz)이 통과되었기 때문입니다.또한, 2013년 동거인과 부부가 동일한 권리를 갖는다는 법안까지 통과하며, 동성 커플에 관한 법적인 제재가 더욱 완화되었습니다. 더불어 입양과 시험관 시술까지 제약 완화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역사적, 법적 발전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혐오의 마음입니다. 독일 연방 경찰청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성적 지향에 관한 범죄는 총 870건, 트랜스젠더 혐오 범죄는 340건으로 모두 2020년에 비해 50% 이상 증가했습니다.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CSD)
CSD는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Christopher Street Day)의 줄임말입니다. 전 세계에서 매년 6월부터 7월 사이에 열리는 행사입니다. 현재 CSD는 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및 퀴어의 줄임말) 커뮤니티를 위한 재미있는 이벤트 정도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 시작은 편견에 대항하는 시위이자 항의였습니다. 이러한 시위와 퍼레이드는 1969년 6월 뉴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동성애자와 트렌스젠터는 정신병으로 간주되어 교도소에 수감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는 독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뉴욕의 크리스토퍼 스트리트에 위치한 스톤월 인(Stonewall Inn)은 LGBTQ에 속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습니다. 커밍아웃(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 이후 쫓겨난 사람까지도 포용하는 곳이었습니다. 문제는 이곳에 경찰이 수시로 드나들어 체포하거나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곳에 있는 업소는 주류 판매 허가를 받지 못했고, 동성애 자체가 범죄로 처벌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69년 6월 28일은 조금 다른 날이었습니다. 경찰이 예상보다 훨씬 늦은 자정 이후에 이곳에 나타났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체포하면서 반감을 샀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시 스톤월 인에 있던 LGBTQ 커뮤니티는 경찰에 항의하고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인근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던 행인까지 합세하며 시위는 더욱 커졌습니다. 바로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LGBTQ 커뮤니티를 향한 차별과 폭력에 대항하는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기념하는 운동이 매년 6월에 열리면서 6월은 프라이드의 달(Pride Month)이 되었습니다.독일의 LGBTQ+의 간단한 역사
LGBTQ는 앞서 설명했듯 레즈비언과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및 퀴어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입니다. 여기에 +가 붙으면, 무성애자와 범성애자 등 수많은 성소수자를 포괄하는 의미가 됩니다. 이러한 성소수자는 언제나 어디에나 있었지만, 독일도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차별과 처벌을 일삼았습니다. 독일 역사상 가장 심한 탄압을 받았던 것은 나치 독일 시대였습니다. 이들의 비밀 아지트는 모두 파괴되고, 출판물도 금지되었습니다. 당시 형법에 따라 수만 명의 성소수자 남성들이 외설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되거나 강제 수용소로 수감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1935년과 44년 사이에만 약 50,000여 건의 유죄가 선고되었습니다. 1950년대에도 이 수치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매년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은 증가하여 1959년 3,500명 이상이 동성애로 인해 수감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 수치가 얼마나 많은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사례입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던 1918년부터 1932년까지 15년간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9,275명이었습니다. 반전의 계기는 역시 미국에서 시작된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1968년 동독과 1969년 서독 연방 공화국에서 성인 간의 동성애 행위에 대한 형사 처벌은 폐지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반쪽짜리 법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미성년자와 여성은 이 형사 처벌 폐지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규정까지의 폐지는 동독이 1987년으로 앞섰으며, 1994년 독일 연방에 뒤늦게 모두 적용되었습니다. 변화의 물결이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대중의 인식은 좋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인식마저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입니다. 동독에서 에두아드 슈타펠(Eduard Stapel)이 동성애 시민권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기폭제는 에이즈 논쟁이었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질병인 에이즈,이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 무렵 독일에선 황금 시간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해당 문제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논쟁과 토론의 결과로 동성애 및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사회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함께 읽으면 좋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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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알덴테 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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