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 저기요우! 제가 뉴요크에서 먹던 Taste, 아뉘에효.”
뭐라는거지? 웬 왈왈이냐! 응징하고 싶었지만 그는 손님, 나는 한낱 알바생. 어쩔 수 없이 다른 샌드위치로 바꿔주기를 수 십 번. 대학생 때 강남역 뱅뱅사거리 ‘서브웨이’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 갓 지점이 오픈했을 때여서 소위 강남 유학파? 출신들이 추억을 운운하며 매장을 찾곤 했는데, 그들 중 한 1/3은 진짜 한국말을 못 하는 건지 일부러 저러는 건지, 어눌하게 한국어를 하면서 불만을 표시했다. 패스트푸드의 표준화된 맛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싶어 짜증이 일었다. 신선도가 떨어지는 채소 외 모든 재료들은 본사에서 온다. 그런데도 맛이 다르다면 그것은 분위기 혹은 기분 탓일 거다. ‘네가 좋아하는 미쿡에 가서 사 드세요’ 라는 말이 혀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들어갔다.
학교를 다닐 때도, 프로그램 제작 차 각계 지식인들을 만났을 때도 비슷했다. 1980~90년대 미국이나 독일, 프랑스 등에서 유학한 교수나 예술가들은 하나같이 젊은 시절 공부했던 나라를 찬양했다. 물론 이국적인 정취를 누비며 청춘을 만끽했을 테고, 다른 문화를 접함으로써 견문은 훨씬 확장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특출하게 공부를 잘했거나 좋은 집안에서 자랐기에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 외국물을 먹을 수 있었을 터. 그렇다보니 저변에는 ‘나는 너희와 태생적으로 달라’ 라는 모종의 우월함이 깔려있었다. 매번 한국은 후진국, 서양은 선진국으로 귀결되는 사고방식도 불편했다. 본인들이야 경제 개발도상국 시절에 유학을 갔으니 한국과 비교가 됐을지 몰라도, 지금은 사정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우리도 충분히 먹고 살만해졌고 파리, 뉴욕에서 한달살기를 할 정도로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졌으며,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한국이 훨씬 뛰어난 점도 많았다. 한 마디로 세상이 바뀌었는데 여전히 라떼를 운운하는 그들이 약간은 꼰대처럼 보였다.
평소 일부 지식인들의 사대주의가 못마땅했던 나는 독일로 오면서 이 나라의 문화를 충분히 느끼되 ‘어우 독일에서는 안 그래요.’ 와 같은 밉살스러운 말은 해대지 말자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다짐했다. 오히려 ‘니네가 잘 살아봤자 얼마나 잘사냐? 내 나라가 최고야.’ 라는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돌이켜 보건데 이런 유치한 결심도 결국 꼰대들의 우월의식과 비슷한 열등감의 산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팔짱을 끼고 봐서 인지 초반 독일살이는 불평불만 투성이었다. GDP 수준으로 보나 세계적 위상으로 보나 경제적으로 한국은 독일에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오히려 라이프스타일은 우리가 훨씬 앞섰다. 대부분의 집들은 도어락이 아닌 열쇠를 사용했고, 2G 핸드폰은 기본이거니와 애니악을 연상케 하는 고철 컴퓨터를 쓰는 이가 있었다. 동네 카페나 소규모 상점은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곳이 많았다. 인터넷은 느려 터져서 특히 비바람이 불면 끊기기 십상. IT강국에서 온 성격 급한 나는 스타벅스에서 파일을 다운 받으며 씩씩거렸다. 온라인 뱅킹은 즉시이체가 아닌 다음날 상대방 통장으로 입금된다.(세상에) 각종 공과금 및 통지서는 이메일이 아닌 우편으로 온다.(Deutsch Post가 망하면 어떻게 될까?) 제일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은 생명과 직결된 병원인데, 동네마다 다르겠으나, 산부인과 검진을 위해 세 달을 기다렸고 예약을 했음에도 검진 당일 2시간을 대기했다. 이건 뭐 기다리다 병이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일. 코로나 락다운 때는 화상 수업을 해야 하는데 시스템 미비로 인해 선생님이 이메일로 숙제만 보내주는 것으로 수업을 대체한 곳도 꽤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방송작가로 일할 때 ‘스마트 교육’ 다큐멘터리의 선진 사례로 독일을 소개한 바 있다. 끙.
각종 다큐멘터리의 해외 우수 사례는 늘 독일이었다. 어쩌면 수박 겉핥기식으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유럽 강국이라는 이유로 독일을 운운했던 것은 아닐까. 언론이 만들어 낸 환상에 나 역시 불을 지핀 것만 같아 죄책감마저 일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응답하라 1997’로 회귀한 것은 아닌지 자주 고개를 갸우뚱 했다. 서비스 천국에서 온 이방인에게 아날로그적인 삶은 낭만보다 불만과 짜증에 가까웠다. 대체 왜 이 나라를 선진국이라 명명하는 것일까? 독일의 첫 해는 이 고민으로 보냈다.
아마 독일살이 2년차였을 때로 기억한다. 이른 가을, 인근 드레스덴의 작센스위스(Sächsische Schweiz)로 등산을 갔다. 등산로는 가파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쉽지도 않았다. 헉헉대며 올라가는 동안 생수 한 병 챙기지 않은 나를 수 십 번 나무랐다. 한국처럼 약수터가 한 두 곳 정도는 있을 줄 알았건만, 아무리 올라가도 물웅덩이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인공적으로 만든 조형물 자체가 거의 없었다.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두는 이 나라 사람들은 그 흔한 운동기구 하나 갖다 놓지 않았다. 온갖 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한다고 찬반 논란으로 떠들썩한 한국의 사정을 잠시 떠올렸다.
벌개진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며 타오르는 갈증을 안고 겨우 고지에 도착했지만 정상을 만끽할 정신이 없었다. 목이 타 들어갔다. “물! 물!” 이 순간 여긴 산이 아닌 사막이었다. 다급하게 둘러보니 기념품 등을 파는 상점 및 레스토랑이 보였고, 고개를 돌리자 약수터 비슷한 게 눈에 띄었다. ‘그럼 그렇지. 하나는 만들어 놨네?!’ 사막 속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 마냥 허겁지겁 달려갔으나, 기대는 한 번에 무너졌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했는데, 물은 물이되 그 물은 사람을 위한 물이 아니었다.
부록. 독일에서 느끼는 몸의 불편, feat 때문에. 결혼, 학업, 취업이 아닌 삶의 질 측면을 이유로 독일 이민을 고민한다면, 몸의 불편과 마음의 불편. 둘 중 어느 쪽이 나와 맞는지를 따져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개를 위하여(für Hund)”
개? 개를 위한 물이라고?! 개한테만 무료 제공이라고?! 맙소사!
허탈한 마음을 안고 터덜터덜 상점으로 발걸음을 옮겨 생수를 사 마셨고, 하산하자 마자 바로 보이는 카페에서 바나나 맥주를 주문해 벌컥벌컥 들이켰다. 술을 잘 못 마시지만 이날의 바나나 맥주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달콤한 향내와 풍부한 거품, 적당한 알코올 도수, 시원한 목 넘김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작센 스위스에 가신다면 입구에 바로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바나나 맥주를 꼭 드셔 보세요. 바나나 맥주에 반하나 안 반하나^^)
내 혀를 흥분케 만든 바나나 맥주를 뒤로 하고, 개를 위한 샘터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이는 개를 데리고 오는 등산객이 많다는 뜻이고, 그만큼 동물을 소중히 여긴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산뿐만 아니라 독일인의 삶 도처에 동물을 아끼는 마음이 그득했다. 모든 마트에는 쇼핑하는 동안 개를 묶어 둘 수 있는 장소가 존재했고, 대형 쇼핑몰의 경우 개 입장이 안 되는 곳도 있지만 허용될 시 사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곳도 있다. 가히 세계 최초로 동물 보호법을 제정한 나라다웠다. 말 그대로 개들에게 개 좋은 나라다.
동물뿐만 아니라 아이, 임산부, 장애인 등에 대한 그들의 배려와 따뜻한 시선에서 자주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가령 노키즈 존은 그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어디든 아이들을 위한 장소가 존재했다. 대학 교내 식당에도 별도의 키즈존이 있는데, 석‧박사를 공부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데려와 같이 밥도 먹고 공부도 한다.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매달 엄마들을 위한 음악회를 운영한다. 관람 시간 동안 직원이 아이들을 돌봐준다. 버스, 트램 등 모든 대중교통에는 계단이 없다. 유모차, 휠체어가 손쉽게 오르고 내릴 수 있어야 하니까.
거창하고 복잡한 정책이나 금전적인 지원은 별도로 하고, 약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사회 전반에 자리함을 목도한 뒤에야 비로소 ‘선진국’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이 생각에 확실한 종지부를 찍은 것은 ‘기부 문화’였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건물에 따라 다르지만 연말이면 입주자들끼리 모여 기부 파티 비슷한 것을 하는데, 나는 우연치 않게 친구네 아파트 행사에 초대를 받았다. 자연스럽게 외국인인 나에게 관심이 모아졌고, 한국의 기부 문화를 묻는 질문이 오갔다. 나는 아주 자랑스럽다는 듯 한국도 기부를 많이 하며, 연말이 되면 적십자 기부는 물론이고, 어느 회사에서 얼마를 기부했다, 기부 없는 천사가 나타났다 류의 미담 뉴스가 보도된다는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때 한 사람이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기부가 왜 뉴스에 나와?
독일에서는 기부가 도처에 흔하고 당연해서 기사거리가 되지 않는단다. 그들에게 기부란 특별한 행위가 아닌 일상의 공기와도 같은 존재였다. 일장연설을 늘어놓던 나는 일순간 숨이 멎었다. 기부는 ‘당연하다’. 당연히 잘 알고 있다고 여겼던 이 단어의 뜻을 찾아봤다.
당연하다: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볼 때 마땅히 그러하다
과연 나는 나눔을 ‘당연하다’고 여긴 적이 있던가? 독일인에게 누군가를 돕는 일은 인정받고 칭찬받아야 할 일이 아니라,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일’이었다. 시민이라면 당연한 의무와도 같은 행위랄까. 기부가 당연하고, 어린이를 아낌없이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고, 장애인을 배려하는 것이 당연하고, 동물을 보호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 이 당연함이 감동적으로 다가온 것은 당연함이 지켜지지 않는 세상이 도처에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에게 마음자리를 내어 주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곳. 막연히 생각했던 ‘선진국’이라는 단어가 명징해졌다.
편리함의 측면에서 보자면 독일에서의 삶은 매우(꼭 ‘매우’라는 부사를 붙이고 싶다.) 불편하다. 하지만 A가수는 얼마를 기부했는데 B배우는 겨우 이만큼 기부하고 생색이냐는, 정작 본인은 백 원도 기부하지 않았을 일부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을 접하며 심기가 불편할 일도 없다.
몸의 불편 vs 마음의 불편
둘 중 어디에 비중을 두느냐가 선진국의 척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여전히 해외 생활 경험자로서의 어쭙잖은 우월함을 경계한다. 괜히 으스대며 “제가 독일에서 먹던 학세 맛이 아닌데요.” 이런 말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 (제 지인분들은 혹시라도 제가 그러면 강력하게 응징해주세요.) 그렇다고 열등감에서 나왔을지 모를 무조건적인 독일 비판도 사릴 참이다. ‘독일인’을 개개인으로 보자면 욕도 나오고 미소도 나온다. 별의별 인간이 다 있는 세상이니까. 다만 ‘독일’이라는 사회는 꽤 멋있었고, 자주 따뜻했다.
부록. 독일에서 느끼는 몸의 불편, feat 때문에. 결혼, 학업, 취업이 아닌 삶의 질 측면을 이유로 독일 이민을 고민한다면, 몸의 불편과 마음의 불편. 둘 중 어느 쪽이 나와 맞는지를 따져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 곰팡이 때문에 경악
- 석회 때문에 짜증
- 택배 때문에 열불
- 기차 때문에 분노
- 열쇠 때문에 공포
- 약속 때문에 고혈압
- 가사 노동 때문에 지침
- 전기세/난방비 때문에 우울
- 날씨 때문에 조울증
자연
한 가지만 얘기하면 아쉬우니까, 그리고 ‘여유’?!
- 작가: 여행생활자KAI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는 여행생활자, 주변 살펴보기가 취미인 일상관찰자
- 본 글은 여행생활자KAI 작가님께서 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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